문화산업은 아궁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정성과 같다


한때 국가 기간산업으로 치켜 세워졌던 문화산업, 특히 현대통령이 집권하면서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며 모든 규제를 풀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잔뜩 바람을 넣는 바람에 한껏 고무되었던 한국의 문화산업은 지금 비틀거리고 있다.

문화부 산하에 문화콘텐츠 진흥원이 설립되는가 하면 민간 부문에선 각종 엔터테인먼트 펀드가 봇물처럼 조성되었지만 그 거품은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조용히 사그러들고 있다.

몇 백, 몇 천억의 자금을 들이붓는다고 없던 문화가 하루 아침에 건설되지는 않는다. 몇몇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 몇 마리의 제비가 봄이 왔음을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가장 먼저 합리적 자본 관계가 설정되었다고 평가받는 대중문화의 꽃 영화부터 살펴 보자. 2001년만 해도 <친구>의 돌풍에 힘입어 한국 영화는 국내 시장점유율 42%를 기록하며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외 시장진출의 소식에 그야말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는 거의 결정된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 영광시대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위시한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줄줄이 참패함으로써 한국 영화 자본은 내일 아침 끼니를 걱정해야 될 정도로 곤두박질쳤다.

<친구>의 흥행으로 자신감이 넘쳤던 투자사 코리아픽쳐스는 본토의 뮤지컬 <팬텀 오브 오페라>에 투자하면서 한국 뮤지컬 흥행의 여명을 장식했지만 그것이 오리지널 한국 뮤지컬의 제작 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부가 특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마리 이야기>의 흥행 참패로 거의 모든 기획들이 얼어붙은 상태이며, <리니지>의 성공으로 도탄에 빠진 코스닥 시장을 그나마 이끌고 있는 게임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약속어음만을 남발하고 있을 뿐이다.

철저하게 자국 콘텐츠의 우위를 전통적으로 확보해 온 대중음악의 경우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소리바다로 대표되는 온라인 불법 다운로드 관행과 방송사 PD 금품 수수파동이라는 협공을 받은 한국 대중음악계는 가장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와 같은 풍요 속의 빈곤 현상은 문화, 혹은 문화산업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재정비하여야 하는 단계로 돌입했다는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우리가 토론해야 하는 첫 번째 의제는 문화산업에 대한 모든 환상을 걷어내는 것이다. 문화는 결코 엘도라도의 황금이 아니며, 더군다나 한탕주의적인 투기의 대상도 아니다. 숱한 영화제작 펀드들이 중간결산 과정에서 거의 예외없이 적자를 면치 못하거나 아예 잔고가 바닥나는 처참함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는 헐리우드도 브로드웨이도 아니다. 문화산업은 그것에 평생을 걸어온 자들의 진지한 자기 실현의 장임을 분명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정부 혹은 지자체의 문화 진흥정책의 방향 전환은 두 번째 아젠다이다. 정책은 인프라에 투자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임기제의 그물에 걸린 관료들이 자신의 임기 중에 무언가 반짝거리는 전시행정의 유혹을 받기 마련이다.

삼년짜리, 오년짜리의 단기적 목표의 지원은 일시적인 효과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영화나 음반, 게임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극장에, 공연장에 유통 메커니즘의 현대화에 투자되어야 한다. 그래서 최종 소비자의 문화향수권의 질을 고양시키고 결국 이들의 층을 공고히 하는데 장기적인 안목을 지니고 투자해야 한다.

전국에 수많은 공간이 있지만 정작 공연 한번 하려고 하면 할 곳이 없는 어이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간신히 체육관 하나를 잡았다고 해도 근 이천만원을 뜯어가는 현실 속에서 무슨 공연문화의 발전을 꾀할 것인가? 문화산업은 치고 빠지는 단타매매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아궁이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정성스런 인내심의 산물이다.
강헌<대중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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