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예년과 달리 겨울이 더 빨리 오는 듯 하다. 덕분에 심한 감기 몸살로 며칠을 앓아 누웠다. 열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온몸이 으슬으슬 한기로 떨렸다. 이불장에서 겨울 이불을 꺼내 덮고 침대에 누웠지만, 한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아! 이럴 땐 따스한 아랫목에서 한 숨 푹 자고 나면 괜찮을 텐데…’

문득 떠오른 아랫목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저 한낱 옛날얘기에 불과한 희망사항 일뿐이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도 아랫목이 있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아랫목에는 항상 녹색 담요가 깔려있었다. 동무들과 어울려 다람쥐처럼 하루종일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 어느새 해가 저만치 떨어지고, 그제야 발갛게 얼어붙은 손과 발에 아픔을 느끼고,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그 녹색 담요 속으로 쏙 하고 몸을 집어넣는다. 더러워진 옷부터 갈아입으라는 어머니의 꾸지람은 뒤로 한 채 그 속에 누워있으면, 얼어붙었던 몸이 녹으면서 사르르 떨린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연탄보일러를 땠었다. 겨울 김장이 끝나면 자연스레 창고에도 연탄이 들어왔다. 그러면 그 해 겨우 살이 준비는 끝난 것 이였다.

이렇게 요즘 같이 추운 날이면 문득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새까만 연탄, 그리고 그 연탄으로 따뜻해 졌던 아랫목…‘아랫목’, 그것은 우리 민족의 문화이다. 펄펄 끓는 아랫목에선 산모가 몸을 풀었고, 우리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그리고 어머니가 그 자식에게 전해주던 삶의 이야기들이 녹아있는 역사의 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며 자식의 손을 부여잡던 눈물의 마당이기도 했다. 이렇듯 아랫목은 우리 민족의 탯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수 천년 세월이 흐르면서 땔감에서 연탄으로 다시 도시 가스, 그리고 전기로 난방 방식이 바뀌면서 아랫목의 자취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나마 아직 연탄을 때는 곳이 있다면 찾아 볼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곳 저곳을 찾아보던 중 아직도 연탄을 때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 집을 나섰다. 찾아간 곳은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조그만 쌀가게, 그곳에서 연탄을 배달하는 신인석(44)씨를 만날 수 있었다. 가게 입구에는 아침까지 배달해야할 5백장의 연탄이 차에 실려 있었다. 이곳에서 10년째 연탄 배달을 하고 있다는 신인석씨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하루 평균 4천장 정도가 나갔다고 한다. 이제는 일주일에 1천장 정도, 그나마 이곳 서민들이 살고있는 산동네가 재개발되기 전 얘기다.

“10년 동안 이 동네에서 가장 변하지 않은 게 뭔지 알아요? 바로 연탄 가격이죠”
10년 전 연탄가격이 2백 50원, 현재는 50원 오른 3백 원이란다.
그의 한마디에 왠지 미안함마저 드는 건 왜일까? 그를 좇아 조그만 골목길을 따라 첫 번째 집을 찾았다. 주인 할머니 혼자 살고있는 조그만 방구석에는 연탄 보일러가 차지하고 있었다. 빨간 연탄 보일러에 곳곳에 남아있는 그을음이 정말 반가웠다. 하지만 “연탄은 연기 나고 탄 갈기 귀찮고, 돈 없으니깐 때는 거지 낸들 가스 편할 줄 모르나?”

창피해서 말하기 싫다는 할머니의 대답에 이내 들뜬 마음도 가라앉았다. 연탄은 이제 아름다운 추억보다 서민들의 아픔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파란 대문 집. 이곳에 올 겨울을 보낼 3백 50장의 연탄을 들여놓았다.

“가스는 비싼데다, 켤 때만 잠깐 따뜻하고 말아요, 근데 이 300원 연탄 하나면 집 안이 정말 따뜻해요, 문 열어 놔도 안 추워요! ”

윤영희(47)씨는 그래서 올 겨울도 연탄을 들여놓기로 했단다.
“어렸을 적 추운 겨울에는 온 가족이 아랫목이 있는 안방에 모여 잤어요. 큰 이불을 하나 덥고 발만 모두 아랫목에 놓고 잠을 잤던 거죠, 그렇게 누워 이런 저런 얘기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었죠. 지금 생각하니 그때가 더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그랬다, 추운 겨울 라디오나 TV 마저도 흔치 않았던 옛날에는 그렇게 아랫목에 모여 얘기꽃을 피우는 것이 유일한 재미였다. 이런 저런 얘기에 근심도 걱정도 없어지고 가족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시절.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다고 할까?

이처럼 ‘아랫목’은 온가족의 따뜻한 안식처였고, 대회의 창구였으며 만남의 장소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때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일이 드물다. 모두 각자의 방이 있고, 난방도 버튼 하나만 살짝 누르면 각 방 구석구석까지 따뜻해지니 딱히 ‘아랫목’이라 할 곳도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가 팽배해 지고, 물질이 최우선시 되는 험악한 세상인 된 것은 전통적 가족의 해체 때문일 것이다. 만약 ‘아랫목’이 남아있다면 그러한 일은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반나절, 연탄 배달을 따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연탄불 꺼질라 새끼 줄 끼운 연탄 들고 달리던 일, 이불 깔아 놓은 아랫목에서 나눴던 재미있는 얘기, 연탄 가스 마시고 큰 일 치를 뻔한 큰누나, 그리고 가족에게 따끈한 밥 한 그릇 먹이기 위해 아랫목 깊숙이 밥그릇을 묻으셨던 어머니…. 하나 하나 아름다운 그들의 추억을 떠올리며, 산동네 좁은 골목길을 내려왔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새로이 들어서고 있는 높은 건물, 이곳 상도동 골목 곳곳에도 낡은 집들이 헐리고 새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이 집들이 모두 들어서면 연탄을 때는 모습은 더욱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저 연탄의 마지막 불씨마저 꺼지고 나면, ‘아랫목’의 따뜻한 추억들도 연기처럼 사라질지도 모를 것이다…
<오규욱 기자>  ohkw@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