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게요

낙원의 도시 파리를 풍미했던 강렬한 삶과 사랑의 화가로 불리는 모딜리아니는 잘 생긴 외모에 교양과 매너가 있어서 당시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그는 주로 여인의 누드를 많이 그렸는데, 그래서인지 자진해서 모델이 되어주는 아가씨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너무 가난해서 빵을 사기 위해 헐값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술과 마약, 방탕한 생활에 의지해 현실을 도피하려 했다. 수년간 영국인이었던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라는 여인과 동거하기도 하였으나, 가난과 음주벽을 견디지 못하고 본국으로 떠나버렸고, 그 무렵 나체 모델을 싼값으로 얻을 수 있는 크로키 모임을 자주 갔었는데, 그의 나이 33세 때 그곳에서 운명의 여인 잔느 에뷔테른느(Jeane Hebuterne)를 만난다.

그녀는 신앙심 깊은 집안 출신의, 검소하고 청순한 19세의 소녀였다. 그러한 그녀와, 마약중독에다 숱한 염문마저 나도는 모딜리아니와의 결혼은 그녀의 부모들에게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나 잔느는 그의 곁에 생활의 반려자로 남았고, 그에게는 예술의 숨결 같은 존재였다. 이듬해 잔느는 딸을 낳는다. 모딜리아니는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딸의 이름을 ‘잔느’라고 지었다.
1919년 무렵 모딜리아니는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널리 시작했다. 그리고 잔느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좋아진 상황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끝없는 음주벽을 놓지 못했다.

<잔느 에뷔테른느(1919년)>는 이때에 그려진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고, 눈동자 없는 눈은 연민과 사랑을 담은 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1920년 1월 겨울 어느날, 차가운 방에 피를 토한 채 죽어 가는 모딜리아니, 그 옆에는 만삭의 그녀가 웅크리고 앉아서 그를 바라본다. 침대 주변에는 몇 개의 빈 포도주 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만이 뒹굴고... 평생 가난과 술과 아편, 그리고 결핵과 같이 한, 그야말로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다 간 불우한 화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의 마지막이었다.

친구들이 달려와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늦었다. 병명은 결핵성 뇌막염. 그리고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께요” 라고 전설처럼 말했다는 잔느 역시 다음날 아침에 임신 9개월의 몸으로 부모의 집 6층 창에서 뛰어내렸다.

예술의 천재들이 전세계에서 몰려들었던 곳, 20세기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 무렵의 파리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이러한 예술가들의 비극적인 인생과 조우할 수 있다. 새로운 질서를 향해 요동치는 문화의 격동기에, 자신의 예술혼과 치열한 내면의 싸움을 벌여야 했던 예술가들의 마음은 늘 황량한 들판에 선 고독 그 자체였고, 현실은 불행한 경우가 많았다. 그 치열함 덕분에 우리는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예술대·예술학부·서양화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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