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존과 균형의 게임


나는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에서 대중음악전공 원생들에게 대중문화 마케팅을 가르치고 있다. 사실 누구를 가르친다는 말이 어불성설인 것이 수강하는 원생들의 면면을 보면 나보다 더 실무경험이 풍부한 사람들도 있고, 누구라고 이름대면 금방 알만큼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가르치는 즐거움보다 막중한 책임감과 큰 부담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어서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첫 학기를 보내고 있다. 원래 가르치다보면 자기도 공부하게 된다고 그 동안 현업에 몰두하느라 덮어두었던 관련 서적도 다시 읽어보고 먼지가 쌓인 10여 년 전 유학시절의 자료들도 들춰보고 하다보니, 그냥 시장 안에서만 경험하며 막연하게 보아온 현상들의 본질을 파헤쳐 보거나 새로운 의미를 느끼는데, 겸임교수라는 타이틀에서 주는 영예 못지 않게 큰 보람인 것이다.

대중음악이든 순수음악이든 불과 10년 전만 해도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공연’이라는 분야가 최근에는 문화산업이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다 해서 우리시대 미래를 책임질 첨단지식산업으로 인식되고 각종 교육기관에는 이를 배워보려는 학생들로 넘쳐나니 격세지감조차 느끼게 한다. 원래 옛말에 자기 직업을 풀어서 설명해야 할 때 인생의 비애를 느낀다고 했다. 전문성은커녕 번듯한 직업으로 인정도 못 받아 가족을 설득하고 가까운 지인 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설명해야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훌륭한 경력의 후배나 동료들이 점차 많아지는 것을 보며 사뭇 자부심을 느끼게도 한다.

사실 이 분야에서 강의의 내용이라 함은 이미 경영학이나 사회학 또는 기타 여러 일반 학문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을 ‘공연’이라고 하는 지극히 제한적인 영역에 대입해보면서 그 본질과 의미를 탐구해 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척박한 인프라와 어려운 시장여건 속에서 생존해 온 일종의 서바이벌 키트의 공개라고나 할까. 하여간 너무 개인경험위주의 무용담 같은 내용들로 흐르면 금방 배울게 없다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또 지나치게 아카데믹하게 흐르면 아마도 전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죽은 강의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의 실무경험과 이론적 공부가 비교적 균형 있게(?) 갖추어 졌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강의를 맡게 된 게 아닐까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내 개인 역량이 뛰어나서가 아니고 워낙 시장의 규모가 작고 역사가 짧다보니 나 같은 사람에게도 겸임교수라는 막중한 역할이 주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언젠가 우리 나라 최고의 CEO로 인정받고 있는 금융계의 한 인사가 국내 최대의 은행장이 되면서 신년특집으로 인터뷰한 기사가 있다. 그 중 마지막으로 포부를 묻는 질문에 거창하고 화려한 비전 대신 “시장에서의 생존”이란 한마디로 대답한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결국 기업이든 개인이든 절대 절명의 과제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뭔가 도모해 볼 수 있는 것이고, 생존해 있어야 기회를 잡든 수익을 올리든 할 것이 아니냐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명제를 다시 생각해 본 계기였다.

우리는 특히 대중문화분야에서 무수히 많은 회사나 단체들이 너무 쉽게 생겨나고 없어지고 또 다시 이름을 바꿔달고 어제의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게 된다. 이 분야에서 일해 번듯하게 성공했다는 사람보다 누가 얼마를 말아먹었다더라, 어떤 회사는 비즈니스 시작한 지 얼마 만에 접었다더라, 누구는 십 수년만에 뼈빠지게 고생해서 돈을 벌기는커녕 빚만 지고 잠적했다더라 등의 이야기가 난무하다. 최소한의 회사 형태조차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보니 꾸준히 발전하면서 오랜 시간동안 시장을 키워온 문화산업 선진국의 성공사례가 가끔 부럽기도 하다.

결국 선진국의 경우가 다르다는 것은 사업 주체별로 각자의 전문영역을 철저하게 지키며, 오랜 시간동안의 좋은 브랜드 이미지와 풍부한 지식의 축적, 그리고 내실 있는 경영마인드를 갖고 균형 있게 발전하며 문화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시장에서 살아남은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이 안에서 무수한 성공의 신화들이 탄생했으며 수많은 우수 인재들이 기꺼이 이 분야에 투신해 성공신화를 창조하는 사례를 많이 보아 오며,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대중문화산업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본다.

어떤 회사들은 대중문화가 가지는 사회적 가치나 역할에 대해 사명감을 가지는 것은 고사하고, 그때그때 사장의 개인적 역량과 네트워크에 의존해 법망을 피해가며 돈벌이에 급급하다. 결국에 가서는 각종 비리와 편법으로 얼룩진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자멸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지나치게 개인의 문화적 신념이나 예술적 가치만을 추구한 나머지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도 유지하지 못한 채 안팎의 많은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독립군처럼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마디로 대중문화예술의 바람직한 경영인이란 ‘시장이라는 무시무시한 밀림 속에서 사회적 가치와 수익의 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게임을 운명처럼 받아들여 즐기며 마치 곰 같은 인내심과 여우같은 지혜로 생존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코치가 선수보다 꼭 잘 뛰어서 가르치고 감독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에 용기와 위안을 얻어 겸임교수로써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많은 인재가 양성되리라 믿는다. 그들의 역량에 의해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며 ‘시장의 사이즈와 전문성은 비례한다’는 마케팅에서의 금언처럼 시장에서의 기회를 노리는 우수한 고급인력에 의해 업계가 발전하고 전문성의 확대대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순 순환의 시대가, 우리 대학 대중문화예술대학원의 선도적 역할이 기폭제가 되어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선철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주)폴리미디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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