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던 그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은 가을이 되면 감나무에서 감을 따 장에 내다 팔아 생활을 꾸리기도 했다. 하지만 감을 다 따는 법은 없었다. 항상 ‘까치밥’이란 이름으로 몇 개의 감을 남겨 놓는다. 배가 고픈 아들이 그 감을 따자고 하면 어머니는 가만히 타이른다. 내다 팔 감을 먹을지언정 나무에 남겨둔 ‘까치밥’에는 손대지 말라고 하신다. 새들도 너처럼 배가 고프다고. 불만 가득한 모습으로 울상을 지으면서도 새들에게 감을 양보한 어린아이는 ‘나눔’에 대해 조금씩 배우게 된다.

‘까치밥’은 우리 조상들이 까치를 ‘길조(吉鳥)’로 여김으로써 생겨났다. ‘까치가 오면 반가운 손님이 오신다’는 말이 있듯,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믿어져 왔고, 수확 때가 되면 수고한 까치들에게 보답의 뜻으로 열매를 남겨놓는 풍습이 생긴 것이다. ‘까치밥’의 대명사가 감이 된 이유는 감나무가 높이 자라 따기 힘든 것도 있지만, 감의 수확 시기가 새들이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지는 시기와 맞물리는 것에도 있다. 새들의 어려움까지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에 담긴 작은 풍습은 여유를 갖고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우리 조상들의 삶을 엿보이게 한다.

옛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농부는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는다. 한 알은 새들의 몫이요, 또 한 알은 땅속 벌레들의 몫이며 마지막 한 알이 농부의 몫이다.’ 생계수단인 농사를 지으면서도 새와 땅속의 벌레를 생각하는 것. 가장 한국적이며 푸근한 우리네 인정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요즘, 날아 다니는 새와 기어 다니는 벌레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하물며 매일 마주치는 아파트 옆 동 아니 옆 호 사람들의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현실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간다 하지만 예전의 그런 인정들을 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옛날 여유와 나눔의 상징이었던 ‘까치밥’을 찾기 위해 소설(小雪)이 막 지난 11월 23일 취재에 들어갔다. 먼저 수확시기를 맞은 곳을 수소문 해 보았다. 하지만 감 재배 농가에서는 이미 수확을 마친 상태였고, 마당에 심어진 한, 두 그루 농가의 감나무에선 까치밥을 찾기란 어려웠다.

“요즘은 그렇게 까치까지 생각해주는 사람이 몇 없어. 옛날 감나무처럼 높아서 열매를 따기 힘든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젠 상업적으로 대규모 재배를 하고 한번에 수확하는데 어디 까치밥을 생각할 재간이 있겠어?”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에도 있었던 ‘까치밥’이 사라졌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던 차에 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만 앙상한 감나무에 이미 수확을 마쳤을 거라 믿었던 감이 하나, 둘 옹망졸망 매달려 있는게 아닌가. 집주인 아저씨로부터 “까치밥으로 감을 남겨 놓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새삼 등하불명(燈下不明)이란 말이 떠올랐다. 바로 근처에 두고서 감 재배 농가만을 찾아 헤맸다니……. 매일 학교를 등교하며 지나던 길인데도, 내 스스로 주변을 살피며 사는 여유를 갖지 못해 이 곳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곳을 시작으로 둘러보니 의외로 인근 지역에 많은 감나무들이 있었다. 가깝게는 우리대학 근처부터 멀리는 천안 대학교 앞까지 집집마다 한, 두 그루씩 감나무가 심어져 있고, 어김없이 ‘까치밥’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밥임을 아는지 날아다니고 있는 까치들도 쉽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까치밥’을 찾고 나니 ‘아직 여유로움을 잃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남아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일말의 안도감이 들었다.

발길을 옮기며 유난히 감이 많이 열린 감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꼭대기에 몇 개 남겨놓은 여느 집들과는 달리 손으로 딸 수 있는 높이에도 감이 매달려 있었다. 감나무 집으로 이사 온지 2년 되었다는 김상덕(46)씨. 다른 집들보다도 높게 자란 이 감나무는 예전 주인이 심어놓고 간 것으로 족히 20년은 넘은 것이라 한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왔을 때 주인이 저 감나무는 우리 손자들에게 주려고 직접 심어서 가꾼 거라고 했지.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에도 이런 감나무가 있었어. 우리 부모님 역시 그 감나무를 애지중지 키우셨거든.” 과거를 회상하듯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다시 말을 잇는다. “그 때는 감을 따다가 동네사람들과 나눠먹곤 했었는데, 요새는 다들 바쁘게 사니 감을 딸 시간도, 나눠 줄 시간도 없잖아?” 잠시 감나무를 쳐다본 김씨는 말을 잇는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이나 다른 누구라도 감이 필요한 사람에게 감을 따 가라고 일부러 놔두는 것이야. 직접 나눠 줄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나누는 거지 뭐. 허허“문득 김씨 집 앞 감나무에서 감을 따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그려졌다.
훈훈한 마음을 지닌 김씨의 집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가에 가만히 서서 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쉬지 않고 달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러니를 느꼈다. 아직까지 여유로움이 남아있는 곳과 바로 건너편의 여유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이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는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김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