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소개했던 고흐가 귀를 자른 사건 때문에 그와 헤어졌던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당시에 아직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인상주의 화가들과 사귀면서, 결국에는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가서 아름답고 순수한 원시의 세계에 탐닉하게 된 화가이다. 처음에는 취미로 그림을 시작하여, 28세때 살롱전에 출품하고, 32세때 5회 인상파전 이후로 고정멤버가 되었고, 이윽고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가족마저 버리고 파리로 왔을 때, 그의 나이는 무려 35세였다.

고갱은 내면적인 감정에 충실한 화가였다. 그리고 고갱 특유의 화풍이 전개된 것도 이 무렵부터의 일이다. 그는 고흐, 로트렉 등과도 사귀었고, 조각, 판화, 도기에도 손대어 보았지만, 화가로서의 생활은 어려웠고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만 더하였다. 그는 산업문명의 발달이 점차 인간의 순수성을 앗아갔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늘 삶의 진실과 순수성에 대해 고민했고, 자신의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알고 보면 고갱이 네 살 때,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그의 부친과 함께 망명의 길을 떠나 4년 간이나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칠레의 리마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다. 그는 혼혈아였다. 그래서 그는 “나의 혈관 속에는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도 하고, “나는 원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정신적 정체성은 유럽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는 남태평양의 타이티섬으로 떠났고(1891), 이 섬의 항구도시 파페이테에서도 40킬로나 떨어진 한적한 시골에서 정착하면서 원주민 여인들과 동거생활도 했다. 이 그림 <타히티의 여인들>은 이 시기의 작품이다. 고갱은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순수성을 타히티 섬의 원시성에서 발견했고, 이 섬은 그에게 원초적 감성을 제공해 주는 예술의 근원지였다. 문명의 이기가 낳은 오염으로 얼룩진 유럽을 탈출한 고갱의 심장에는 열대지방의 정적이 안겨 주는 아름다운 맥박의 소리가 들려 왔다. 고갱은 이처럼 신비감으로 가득한 체험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던 것이다. 이후에 파리로 돌아와서 개인전을 열고 거주(1893. 8월~1895. 7월)한 적이 있으나, 결국에는 문명생활의 역겨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타히티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천국’에서도 그는 편안하지 못했다. 빈곤과 고독에 시달리고 병마에 시달려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고, 원주민을 옹호하여 현지의 백인 관헌과 충돌도 일으키면서 결국에는 이 섬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하였다. 흔히 고갱을 ‘고귀한 야만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처럼 문명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지만 원초적 욕구에 순응하고 진정한 자유를 항해할 수 있었던 그의 예술에서의 상징성과 내면성, 그리고 비(非)자연주의적 경향은 P. 세뤼지에, M. 드니, P. 보나르 등 나비(NABIS)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20세기 회화가 출현하는 데 근원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 전공>
<이원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