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2월,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루앙의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후 1895년까지 그는 90여점의 <대성당>연작을 그렸는데, 이 작품들은 인상파의 이념을 가장 치열하게 실천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연작이 우리들에게 특별히 기억되는 점은, 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각 다른 시각(時刻)의 성당의 모습을 각기 다른 캔버스에 담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4개의 캔버스를 펼쳐 놓고 시간마다 다른 성당을 그렸다. 대성당은 새벽 햇빛에 장미빛과 진주빛 그리고 우유 빛으로 반짝이고 또 대낮에는 작열하는 듯한 열기를 뿜어대고, 해질 무렵에는 자색이 낀 푸른 회색 속에 잠겨 든다. 이처럼 하루의 시간과 햇살에 따라 육중한 석조 건물은 분산되고 포개진 빛으로, 또는 응어리지고 얼룩진, 재료 그 자체를 암시하는 터치와 반점으로 표현되어 진다. 철저하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던 모네는 현장에서 무조건 그림을 완성해야 했다. 내일은 빛이 어떻게 변할 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팔레트에서 색을 섞지 않고 캔버스에서 직접 색을 혼합했다. 이는 빠른 속도로 그림을 완성시키고, 또 색조의 선명한 효과를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그 성당을 보는 것은 태양광선이 반사되어 우리의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며, 빛이 달라지면 그 모습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는 ‘성당 그 자체의 모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빛에 의해서 구현된 형상, 그것이 바로 화가들이 표현해야 할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19세기 중엽부터 화가들은 ‘살아 있는’ 주제의 ‘살아 있는’ 장면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미술이 밑그림, 색채론, 구성, 해부학, 누드 모델의 드로잉과 이들의 채색 의상에 관한 역사적 연구 및 고전에 대한 탐구 등 주제를 지닌 계획된 그림의 제작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었던 데 반하여, 이 시대의 화가들은 리얼리티에 관심을 돌렸다. 쿠르베는 현실생활에서 그 대상을 찾았고, 밀레는 전원으로 갔다. 화가들의 주제는 이제 아무 곳에나 존재하는 것이었고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진술의 발견은 예전에 화가들이 추구했던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얼마나 부정확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었다. 화가의 눈이 아무리 정확하다 한들, 그것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자신이 본 모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미디어와 예술의 관계로 보자면, 인간의 외부로 투영된 ‘또 하나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혹은 사진술이 인간의-혹은 화가의-시각의 리얼리티를 객관적으로 검증해 준 셈이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미술은 결정적으로 새로운 전개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즉, 대상을 재현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자체의 형식논리, 색채와 형상의 순수한 구성미를 추구하는 혁명을 겪게 되는 것이다.
<예술대·예술학부·서양화 전공> 교수
이원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