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지침의 문화
내 힘으로 얼음을 지쳐 내 길을 만든다
동네 아이들은 눈쌓인 얼음위로 먼저 달리려 힘차게 썰매를 지쳤다.

예전, 추운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을 적에는 온 가족이 월동(越冬) 준비로 분주했다. 어머니는 온 가족들이 겨우 내 먹을 김장을 하고, 아버지는 겨울을 따뜻이 보내기 위해 가을부터 나무 장작을, 그리고 어린 아이들은 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다니면서 겨우 내 놀 썰매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주으러 다녔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주어온 판자며 나무 막대, 굵은 철사, 못 등으로 썰매를 만든다. 판자 밑에 두 개의 나무 막대를 붙이고 그 나무막대에 아래에 철사를 입힌다. 그리고 손에 쥐기 적당한 나무막대에 대못을 박고 그 끝을 불에 달구어 망치로 두드려서 뾰족하게 만들면 썰매는 완성이 되는 것이다. 비로소 온가족의 겨울나기 준비가 끝난 것이다.
아이들은 얼음이 단단히 얼기도 전에 썰매를 들고 내[川]로 나간다.
그러다 보면 설 얼은 곳에 빠져서 우는 아이는 꼭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머니가 달려와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곤 왜 조심해서 놀지 않았냐며 야단을 치고 그만 울라며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게 놀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아이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간다. 얼음을 꼬챙이로 지치느라 팔이 아프고 썰매 위에서 무릎을 꿇고앉아 있느라 다리도 저리다. 그래도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다음날 아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내[川]로 모여든다. 그리곤 썰매도 타고 신발로 스케이트도 타고 또다시 얼음에 빠진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추워지면 집안에 틀어 박혀 컴퓨터 앞 가상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있다.
동심(童心)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만든 썰매를 바람을 맞으며 타는 대신 따뜻한 방의 컴퓨터를 선택한 아이들, 이들에게 과연 동심은 남아있을 것인가? 썰매를 타며 꿈을 키워 가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썰매를 타는 곳이 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강원도 인제 소양호에서야 썰매를 타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소양호에서는 지난 24일부터 빙어축제가 진행되고 있었고 축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전통 놀이체험이란 코너에서야 썰매를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꽁꽁 언 소양호 한 가운데서는 사람들이 빙어낚시를 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남녀노소(男女老少) 구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예전처럼 나무막대에 꼬챙이를 끼워 손으로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부모님이 아이들을 밀어주는 모습, 스노우 모빌에 여러 썰매를 이어 얼음 위를 달리는 모습 등 타는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썰매가 보였다.

소양호에서 썰매를 대여해주는 김원배(45)씨는 예전에 비해 썰매가 많이 다양해 졌으며 힘들게 지치지 않아도 잘 나간다고 말한다.
소양호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아이들만큼이나 썰매를 타는 어른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런 모습에 그는“아이들 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합니다. 썰매에 스케이트 날을 달아 예전보다 타기가 한결 쉬워졌지만 아이들은 한시간 정도만 타면 춥고, 힘들어서 잘 안 타려고 하는데 어른들은 예전의 추억이 있어서인지 한번타면 쉽사리 일어나지를 않아요”라고 했다.
경기도 시흥시에서 두 딸과 함께 왔다는 이성오(43)씨도“요즘은 예전과 달리 썰매를 타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옛날처럼 자식들에게 추운 날에도 나가서 뛰어 노는 것을 가르쳐 주고싶어서 이곳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소양호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썰매를 타며 옛날의 추억을 많이 떠올렸다. 자신이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힘들게 얼음을 지치며 놀던 그때를 말이다.
요즘은 썰매는 거의 스케이트 날을 이용해서 쉽게 나아간다. 그래서인지 기성세대들은 예전의 손으로 힘들게 얼음을 지치며 나아가는 그 맛이 나지를 않는다고 한다.
얼음을 지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끝까지 나아가게 된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우리 내는 그렇게 배운 것이다.
문득 세상이 너무 쉽고 빨리 변한 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가서 책을 찾아보기보다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손끝하나만 까딱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쉽고 편리한 세상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너무나 나태해졌다.
이제는 썰매조차 손 힘을 크게 빌리지 않고 놀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철사대신 스케이트 날을 입히고, 대못을 달구어 망치로 두드려 뾰족하게 하는 대신 앞 뒤 날카로운 꼬챙이를 나무막대에 튼튼히 박아 더욱더 견고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모습조차 보기 힘들어졌다. 겨울 빙어나 산천어 축제의 한 구석에서 전통놀이 체험이라는 코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겨울이면 사람들은 모두 스키장으로 몰려가고, 그 상황도 되지 않는다면 눈썰매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모두 높은 곳에서 쉽고 빠르게 내려오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뚝딱뚝딱 거리며 만들던 썰매가 생각이 난다. 밤새 눈이 소복이 내려 쌓이면 비료포대에 볏짚을 넣어 가지고 집 뒤의 동산으로 올라가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오로지 내가 길을 만들어 내려오고 또 올라가 새로운 길을 만들며 내려왔다. 불과 20년도 채 안된 시간이었다.
이제는 추억 속에서나 찾아야 할 썰매가 되어 버렸지만 겨우내 얼음을 지치며 놀던 그 시절에는 놀이가 곧 공부였으며 인생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고 조금 더 편한 것 만 찾는 요즘 사람들, 이제는 옛 썰매를 타듯이 조금은 힘이 들지만 손 힘으로 얼음을 지치는 노력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경동 기자>
<김경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