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에 대한 애정

제1차 세계대전은 본격적인 기계시대를 연 견인차역할을 하기도 했다. 개전 초기에 전쟁터로 향하던 군인들은 말을 타고 적진으로 진격하는 전투를 상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관총이 등장하자 군인들은 참호 속으로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전쟁은 지리한 참호공방전으로 이어졌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윽고 장갑차가 등장하였고, 전쟁말기에는 비행기를 동원한 사격과 폭격까지 이루어졌다. 이 기간동안 국가의 운명은 무기개발에 달려 있었다. 장갑차의 경우에는 최초의 원시적인 모양에서 거의 오늘날의 전차의 형태를 갖춘 기종이 개발되기까지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맨해턴에는 마천루가 등장하였다. ‘제1차 기계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기계가 도시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사람들의 활동도 기계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림: Three Women(Le Grand Dejuner)1921>

페르낭 레제(1881-1955)는 (전회에 소개했던) U. 보치오니 보다 한 해 먼저 프랑스의 노르망디 아장땅(Argentan)에서 태어났다. 건축가의 도제로서 일을 하다가 1900년에 파리에 와서 건축제도사가 되고자 했다. 에꼴 드 보자르에 입학은 거절당했으나 거기서 비공식적으로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회화에도 관심을 가져, 1905년부터 인상파로 시작하여 세잔느, 피카소, 브라크 등 입체파화가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이후에는 순수추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레제의 작품에서 무엇보다 인상에 남는 것은 로봇과 같은 모습을 한 인체를 그려낸 그의 회화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동안 군에서 복무했는데, 이 시기의 경험이 그의 회화에 결정적인 전기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20년대 초반에 레제는 작가 상드라스(Blaise Cendrars)와 함께 영화제작에 참여하였고, 드디어 1924년에는 그가 만든 최초의 영화 [기계적 춤(Ballet mecanique)]을 완성하였다. 이 영화는 현대도시의 모든 요소를 기계와 그 운동으로 묘사한 19분짜리 영화로서 초기실험영화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전쟁 이후에 그려진 레제의 그림들은, 이 작품 [세 여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계화된 풍경과 인체들을 표현하고 있다. 심지어 계급장이나 훈장마저도 그에게는 공업제품의 상표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아방가르드예술가들에게 기계의 에너지, 역동성은 근대(modern)의 상징으로서 ‘과거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인류학적 비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로봇(robot)‘이라는 말도 이즈음에 탄생했다. 이러한 기계화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보인 사람들이 적지 않은 반면, 그 위험성을 지적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각과 노력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인간성인지?‘,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인간복제가 거론되는 현재에서도 여전히 미지수로 남겨져 있다.
<예술대·예술학부·서양화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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