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자본주의 경제의 특성을 시장에서의 판매자와 구매자의 교환관계라고 한다면, 21세기의 경제는 제레미 리프킨의 말처럼 서버와 클라이언트라는 네트워크 관계로 바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자본형태의 측면에서 보아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물적 자본이 중요하게 요구되었다면, 이제는 개념이나 아이디어, 이미지 등의 지적자본이 산업의 주요 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이며, 지적자본의 수원(水源)인 문화예술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콘텐츠의 기초자원(source)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의력의 유료화 가능성은 기존의 시장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문화적 규준, 관습, 활동을 상품 형태로 바꾸어내는 기술인 마케팅을 통해 이미지나 신화, 그리고 환상을 감성, 체험 등과 결합하여 사람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돈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우리의 상상을 대변해 주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그러하고 꿈과 상상을 제공하는 뮤지컬이 그러하며, 영웅이 되는 환상을 제공하는 게임, 지역축제나 관광이벤트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국가가 산업정책에 문화정책을 끌어들이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다. 문화, 혹은 문화경쟁력 등의 용어가 이제 낯설지 않은 만큼 문화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각 국은 세계시장점유를 위한 지원과 육성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화란 한 나라의 규범, 습관, 그리고 행동과 생활방식으로 이루어진 총체로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나 기업이 단순히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방편으로만 인식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창조적 역량은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이것이 곧바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전환되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문화콘텐츠의 기반이 되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선행되어야 하고, 관련인적자원의 육성과 인프라 스트럭처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순수예술과 문화예술 인적자원의 육성은 무척 중요하다고 본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술작품은 사유의 사물(事物)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식을 획득하여 저장하는 인식과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과학이라면, 예술작품의 원천인 사유는 모든 위대한 철학에서 변형 또는 변신하지 않고도 분명히 표출되는 것으로, 우리는 이를 창의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창의력이란 철학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생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적인 사유가 없는 문화산업, 문화예술 인력을 상상하면 그야말로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 예로 ‘문화의 민주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유하지 않으면 주민의 참여 없는 축제가 남발되고, 문화예술이 없는 문화예술 공연장만 덩그마니 건립될 것이다.
참고로 네덜란드의 문화정책을 보면 문화산업의 핵심은 창의적 발상이며, 이는 철학적 배경 없이 생겨날 수 없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문화예술기구를 직접 운영하지 않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따르면서 문화정책이 근본적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던져주고 있다.
사실 온통 문화영역 또한 재정자립을 해야 하느니 경쟁력을 키워야 하느니 하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그 지원의 효과에 대한 깊은 사유가 없음이 유감이다. 문화산업이 문화예술의 외피를 뒤집어 쓴 ‘산업’으로 ‘돈’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산업을 만들되,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손경년<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재)부천문화재단 전문위원 겸 문화정책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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