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는 어쩌면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다. 우리 나라 사망원인 1위는 암이라고 하지만 에이즈가 더 무서운 이유는 그 병에 걸린 이를 온 세상이 떠밀어내기 때문이다. 에이즈 검사는 원칙적으로 본인이 원해야만 할 수 있고, 그 결과는 본인에게만 알려준다. 물론 담당자의 착오나 실수로 본인이 아닌 사람이 먼저 알게 되는 경우 본인이 받는 상처는 매우 크며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
그건 에이즈에 감염된 것을 주변 사람이 알면 그가 받게 되는 불이익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암에 걸린 것을 본인이 알면 충격을 받을까봐 오히려 주변 사람에게 먼저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문제 삼는 일은 거의 없다. 에이즈 감염인은 감염사실을 통보 받는 순간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 감염인은 사실상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렵고 치료비는 커녕 검사비 조차 버거운 경우가 많다. 에이즈의 주요 전파 경로는 성 관계이다. 그것이 감염인을 죄인 취급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게 하는 이유 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에이즈는 반드시 난잡한 행위를 해서 걸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억울하게 감염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죽어도 싸다’ ‘그럴 만한 행동을 했으니 벌을 받는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참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라고 호소하고 있다.우리사회가 감염인을 도덕 윤리적으로 문란하며,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집단으로 바라보고, 사회로부터,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동정의 여지가 없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심히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은 감염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염사실을 계속 숨기게 하고 은둔하게 하여 결국 에이즈 확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스스로 편견을 걷어내고 에이즈 감염인들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우리가 에이즈 감염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의 친구, 이웃, 가족일 수 있는 감염인들을 인정해주고 어려운 사정을 들어줄 때 그들의 마음이 안정되며, 양지로 나와 스스로 양심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감염인과 비 감염인 모두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프랑스 축구선수 지단 등 월드 스타 45명이 지난해 월드컵을 앞두고 에이즈 극복 의지를 노래한 공식 음반을 발표한 참뜻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즈는 주로 성 접촉으로 전파되며,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간의 면역능력을 약화시켜 쉽게 다른 질병에 걸리도록 하는 하나의 질병일 뿐, 그 이상의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반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쳐올 수 있다는 점에서는 무서운 질병일 수 있다. 어쩌면 성행위가 가능한 모두에게 가능한 질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무서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조차 의심하고 헤어지게 만드는 에이즈에 대한 지나친 과장, 선정적 보도와 곁에 있으면 옮을지도 모른다는 무지인지도 모른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에이즈에 대하여 바로 알 때에야 비로소 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일소할 수 있으며, 감염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감염인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창우<대한에이즈예방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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