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교육은 백년을 내다보는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대학은 더 이상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구시대의 표어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대학도 교육 수요자와 기업의 요구에 맞추어서 교육해야 한다는 ‘수요자 중심 교육’과 ‘맞춤 교육’ 같은 신조어가 이 시대의 유행어가 되어 있고, 대학간 경쟁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치열한 상황입니다.

이 시대의 유일무이한 가치가 되고 있는 무한 경쟁주의가 대학에도 어느 듯 깊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장 직면하고 있는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마치 시장 골목에서 온갖 현란한 말과 표정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듯이, 대학도 그렇게 요란을 떨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백년을 내다보는 인간교육이 자리잡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백년을 내다보는 계획이라고 한 뜻은,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가치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준비하고, 새로운 인간성과 공동체성을 가꾸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시대가 주창하는 가치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시대를 만들고 있는 가치는 결코 변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가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처럼 역사를 거슬러 보면, 한 시대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음 시대가 되면 오히려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가치가 최고로 여겨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뒤도 옆도 안보고 달려갑니다. 하지만 한 시대가 지나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허망하고도 위험한 일이었던가, 또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죄악을 범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 인간의 역사인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간의 무한경쟁이 대학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쟁 신드롬>은 현재의 대학사회가 정신적으로 부족한 모습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대학사회는 경쟁에 앞서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협력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대학사회가 앞으로도 협력에 앞서 경쟁의 원리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인간을 더욱더 동물적인 생존투쟁으로 밀어 넣게 될 것입니다.
많은 지성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절제하고 무자비한 경쟁이 인간성을 메마르게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더욱 험난하게 만들고, 나아가 이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있습니다.
서양에 가보면 얼마 전까지 그 화려한 위용을 자랑했던 성당 건물들이 점점 흉물이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토록 엄청난 건축물들을 만들 수 있었던, 그 화려했던 시절이 어쩜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세상 가치를 따라 승리를 상징하는 화려한 건축물을 세웠지만, 교회와 믿음은 그것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학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의 교육정신과 전통은 규모의 크고 작음에 따르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의 경쟁에서 당장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시대를 넘어서서, 새로운 시대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예언적자세가 교회와 믿음을 지켜온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대학도 우리 시대의 가치를 넘어 새로운 인간과 공동체를 향한 꿈을 키우는 자리가 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대학, 내일을 준비하는 대학이 될 것입니다.
우리 성공회대학교에는 정신지체장애인 학교인 성베드로학교가 있습니다. 성베드로학교 가을 운동회 때의 일입니다. 100미터 달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일제히 출발신호에 맞추어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1등으로 달리던 학생이 결승지점에 거의 다 도착하였을 때 달리기를 멈추더니 뒤에 있는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얘들아 빨리와 같이 들어가야지”하면서 친구들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최근 매체광고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최고와 1등, 경쟁력이라는 말이 각종매체에 난무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최고와 1등, 경쟁력이라는 논리는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마치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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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육시스템은 예를 들어 한 반에 40명의 학생이 있으면 1등을 제외한 나머지 39명은 1등을 위한 들러리구실을 하는 학생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교육철학과 시스템은 결국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심각한 <경쟁 신드롬>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다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이웃과 사회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부족한 우리들의 모습을 거꾸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이, 힘있는 사람보다는 약자들의 작은 외침이 소중하다는 것을, 그리고 경쟁에 앞서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협력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교육현장에서부터 학생들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수입니다.
앞만 보고 나 홀로 1등을 하기 위해서 달리던 시대에서 지금은 여럿이 함께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한 협력의 시대로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가장 기쁜일도 가장 슬픈일도 그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그 가운데 이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학생 여러분 개인이 개인으로 있을 때에는 결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 나갈 때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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