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거리 아닌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아야
지난 호에 밝혔듯이 퀴어(동성애)코드는 이제 무수한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수용되고 있다. 더 이상 동성애는 은폐된 소수만의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문화적·상업적으로 흡수되는 새로운 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흥미거리를 유도하는 상업주의에서 그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동성애’라는 개념 자체의 낯섦을 성토하기에 앞서, 그것을 계속해서 낯설게 하는 대중매체의 구조를 살펴보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90년대 중반, 공중파 TV를 통해 선보였던 드라마 속의 동성애자들은 하나같이 비정상적인 상태의 삶을 살거나 성폭력의 트라우마로 인한 피해망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편집증, 자살, 파멸이 나타나는 ‘은비늘’, ‘숙희·정희’, ‘두 여자의 사랑’ 등의 공중파드라마) 필라델피아, 크라잉 게임, 패왕별희와 내일로 흐르는 강, 로드무비 등 동성애코드를 강하게 어필했던 영화들의 경우, 실제 내용속에서는 오히려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적이거나, 동정적 시선, 자극적인 메타포에 그치는 등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
소수를 ‘소수’로 낙인찍고 그들을 ‘비정상’적이고 일상으로부터 소외된 ‘타자’들로 바라보는 것은, 동성애가 이성애와 다름을 인식시키는데 한 몫을 할 뿐이다. 즉, 일반 대중들에게 ‘일상적’이 아닌 ‘일탈적’ 동성애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여전히 이성애만이 정상이라는 논리를 은연중에 심어준다. 여성들이 은밀한 시선을 교환하며 서로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광고에서 레즈비언적 요소를 발견한 논의가 있지만, 그것은 다분히 남성의 환타지를 충족시키는 이미지로 작용할 뿐이다.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하는 주인공 주변의 게이친구는 주인공의 자유분방함과 활달함을 표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거나 여자 친구들의 ‘쿨한 삶’을 대변해주는 장식 정도로 그친다. 대중매체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지는 퀴어코드는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만 할 뿐, 실제 성소수자의 인권개선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번도 ‘나는 언제부터 이성애자가 되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 이성애가 동성애보다 정상이라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혹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빈약한 논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함구하면서 말이다. 남성우월주의, 인종차별, 가족주의 신화 속의 이성애 중심주의는 당신에게 단 한가지의 삶과 고정된 사랑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들의 주체적인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되고 있는 ‘퀴어 애즈 포크’는 게이들의 삶을 일상적으로 친숙하게 담아내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레즈비언의 삶과 사랑을 다룬 미국 외화 ‘L워드’또한 현실적이고 솔직한 문제들을 표면에 드러냄으로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 프로가 매체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 영화나 드라마속에서 언제나 주변부를 차지하고 있던 동성애가 전면에 부각되었음은 물론, 이성애자들의 환상속에 있던 이들의 삶을 현실로 표출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8월에는 국내최초의 레즈비언 라디오 방송 ‘L 양장점’이 공중파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성애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동성애의 주체로서의 담론을 양상하고 발언하는 모임들도 온·오프 라인을 통해 꾸준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움직임이 기존의 동성애문화에 대한 편견을 깨고 대중매체속에서 생동하는 새로운 문화로 형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다름과 틀림은 동일하지 않다’는 인식에는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다름’을 정의내리고 구분 짓는 과정에 대해서는 지극히 보수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개개인의 정체성은 폭력과 억압을 통해 규정되어질 수 없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 사랑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전제가 필요함을 간절히 바라본다.
이진주<국문·3>
이진주  pearl289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