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국 문화 / 민화 - 서민의 문화

‘장식과 상징’통해 자유로운 서민들의 정서 반영한 민화
앞으로 민화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민화 창작이 필요하다
우리 민화의 미술사적 가치를 처음 밝혔던 일본의 미학자 야네기 무네요시(柳宗悅)는 “나의 직관은 이 그림이 대단히 매혹적이란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무언가 신비스런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지혜를 짜서 다시 바라보니 이 그림만큼 모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그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근대인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림 자체가 온통 불합리한 것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민화의 매력을 말했다.
19세기 서양 문물이 급격히 우리나라로 유입되며 ‘합리적’인 서양의 지식은 우리의 사고를 지배했다. 그 가운데 온통 ‘불합리한’ 것들로 이뤄져 있는 민화는 제 자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 후 지나버린 오랜세월은 이제 우리 주위에서 민화의 흔적을 찾는 것 조차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옅어져버린 민화의 발자취를 따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오는 10월 30일까지 일본민예관과 공동으로 주최하는 ‘반세기 만의 귀향―반갑다! 우리 민화(民畵)’ 전을 보기위해 박물관을 찾았다.
고양이 같은 까치호랑이, 원근법이 뒤죽박죽된 책거리 그림 등의 민화 이미지들이 가득한 그 곳엔 이미 엄마 손을 붙잡고 민화를 구경하러 온 꼬마들과 중·고등학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한번에 그은 듯 깔끔하고 정교한 것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부족한 듯한 느낌…. 선비들이 그리던 수묵화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화사한 색채감이나 우스꽝스런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만화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민화는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있으며 저마다의 고유한 신앙과 생활풍속 및 민족의 미감(美感)을 보여주는 소박한 그림이다. 따라서 민중의 즐거움, 슬픔, 삶, 죽음, 기쁨, 사랑, 미움, 자연의 아름다움 등이 가시적(可視的)으로 조형된 그림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서민들의 미의식과 정서를 반영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민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장식과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살과 창호지에도 여러가지 장식적인 문양이나 그림 혹은 꽃이나 나뭇잎을 덧붙일 만큼 잔잔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우리 선조들은 다락문이나 벽에도 산수화 몇 폭을 붙여 방 안 분위기를 한결 북돋았다. 그 중에서도 민화는 거의가 병풍에 편집된 후 집 안에 간직되어 장소나 행사의 내용에 알맞게 선택되었다.
사랑방에는 책거리나 문자도, 혹은 주인이 호방한 성품이라면 수렵도나 호랑이 그림, 안방에는 화사한 화훼도나 부귀를 상징하는 화조도, 또는 수많은 물고기가 노닐며 다산다복을 뜻하는 어해도, 혼례의 신방에는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모란병풍 또는 탐스런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화조도가 제격이었다. 수연(壽宴)이나 회혼례 때는 주인의 일생을 다룬 평생도를 주문하여 장식했으며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는 십장생 그림으로 분위기를 한결 북돋았다.
이렇게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잡은 민화가 크게 꽃피운 것은 18세기 영·정조 시대다. 민화는 일반 서민들이 우러러 볼 수밖에 없게 권위를 나타내면서도 화려하고 품위를 갖춘 예술과 반대로 민중의 생활 문화로서, 사대부가의 예술에서 벗어나 독자적 자기양식을 창조했다. 이러한 민화는 19세기로 내려올수록 그 본래의 내용과 무관해지면서 자신들의 정서에 맞닿는 자유분방한 형식미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문물이 유입되고 일제 강점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서양화들이 급격히 유입됐고, 도화원은 사라져 민화는 점점 그 맥을 잃게 됐다. 오히려 모사품만 늘어나게 되면서 민화는 질적으로는 점점 낮아지고 양적으로만 늘어나게 됐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게 됐고, 해방이 된 후에도 민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민화 용어가 정립이 되고 조금씩 사람들이 연구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기만 하다. 민화는 그 범위가 워낙 방대하고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연구 대상이 되기 힘든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현재도 어떤 것을 민화라고 지칭해야 하는지-궁중에서 그린 민화를 민화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 마는지 등등- 에 대한 논의조차 종결되지 않았고, 현재 그려지는 민화 작품을 민화라고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민화의 분류 또한 연구자에 따라 각각 그 방법과 내용이 다르며 이는 민화를 보는 관점에 따라 그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민화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부여한 사람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인 학자 야네기 무네요시(柳宗悅)이다. 그러나 이제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가는 민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런 논의를 통해 민화의 기준과 역사를 하나씩 정립해가야 할 것이다. 전통적인 민화를 재현하며, 현대에 맞는 새로운 민화를 창작하는 일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박물관에서 민화를 관람하던 아이들은 민화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그림을 보며 깔깔댔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호랑이며, 한껏 과장된 인물들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찾은 것일까?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유통된 민화는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후대에도 그 속에 담긴 민중의 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후대에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지켜가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