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인 의식하기의 슬픔: 한성-서울-경성

중세도시 한성에서 근대 도시 서울로 바뀐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1900년대 서울의 모습이 벽안의 외국인 비숍의 눈에는 다음과 같이 포착되었다.

나는 서울을 밤낮으로 조사하면서 그 왕궁과 빈민가를 빛 바래가는 왕조의 광휘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궁핍한 삶을 보았다. 나는 또 목적 없이 빈둥거리는 군중들과 그들의 중세적인 행렬을 보았다. 나는 서울의 군중들에서 오랑캐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완강한 행렬. 이제 막 태동하고 있는 중세를 해체시키려는 세력들의 면전에 좁은 길을 가득 메우고 그들의 예법과 관습과 중세적인 군주국의 수도로서 정체성을 지키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을 하고 있는 행렬을 본 것이다. (이사벨라 비숍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중에서)

중세 군주국의 수도라는 정체성 자체가 이제는 인습이 되어버린 상황, 하지만 서울시민들은 아직도 그 인습을 전통으로 믿고 살아가고 있다. 근대라는 대조류을 거부하지만 그 속에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서울. 이러한 서울의 모습을 비숍은 ‘안타까운 몸부림’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중세를 해체시키려는 세력은 누구였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지금 서울 성들이 많이 무너지고 퇴락하여 첫째 보기에 가난하고 허술하여, 외국 사람들이 와서 서울이라고 보게 되면 추한 길과 더러운 집들은 고사하고 위선 성이 퇴락하였은즉 보기에 울타리 무너진 집 같아서 위선 더러운 길과 무너져 가는 오막살이집들 보기 전에 벌서 가난하고 추하고 허술한 서울을 알지라. 이런 더러운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 대접을 하며, 어찌 업신여기고 천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 나리요 .([독립신문] 1896.10.29.논설 중에서)

훼손된 성곽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보호막이 걷혀버린 근대도시 서울은 타인의 눈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가난과 추함을 결정하는 것은 외국인의 눈이었다. 비숍의 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의 부끄러움은 내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외부의 눈을 의식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끊임없이 서울을 규정하는 근대인의 눈. 여기서 타자화된 서울의 본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이제 서울의 중심은 동경이었고 파리와 뉴욕이었다. 그리고 서울은 반성 없이 근대 쫓아가기에 헐떡이는 불쌍한 도시가 되었다. 지도가 가리키듯이 경성 시가는 분명히 그 자연을 배경으로 해서 계획된 도시였다.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은 그 남산을 남쪽으로 끼고, 줄지어진 성벽을 지키는 숭례문에서 큰 거리를 지나서 광화문에 이르러, 근정전의 본관에 당도해, 높이 북한산을 우러러 보는 질서 있는 건축과 그 자연의 배경일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언제나 서울을 자연이 지켜주는 곳으로 골랐다. 그러면서도 그들 역시 그 건축에 의해 자연을 더욱 장식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자연에 의해 서울이 지켜지고, 서울에 의해 자연은 장식된 것이다. 이 점은 특히 부의 면적 고작 동서로 일리, 남북으로 이십여정인 이 경성에 있어서 분명히 나타나 있는 미관(美觀)이라 생각한다. 지도를 보고 있자니 이러한 미가 오늘날 잃어져 가는 것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조선행] 중에서)

그러면 내지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경성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경성은 주자학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건설된 중세도시가 아니었다. 경성 시가는 서양식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고 거리는 전차와 자동차가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근대적 화려함의 이면에는 식민지 도시의 보편성이 감추어져 있었다. 일제는 조선상인들의 기반인 운종가를 중심으로 하는 북촌을 배제한 채 일본인 거주민촌이 있었던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남촌 위주의 개발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북촌의 도시기반 시설은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경성은 일본인에게는 편리하고 쾌적한 도시였지만 조선인들에게는 불편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괴로운 도시였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자연과 조화로운 도시 경성을 찬미한다는 것은 일종의 감상적인 복고주의와 다름 아니다. 이 또한 타인의 시각일 수밖에 없었다.
타자화된 서울. 일제에 의해 1912년 ‘경성시구개수 예정 계획노선’과 1934년 ‘조선 시가지계획령’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구조화된 서울/경성을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놀라움 속에서 서울의 근대도시화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백여년 전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을 한국의 메카’라고 지적한 비숍의 말이 과연 맞는 말이었나를 생각해 본다.
장두식<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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