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물론이고 대학이라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도 아주 다양함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학과와 전공이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는 각기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등이 다릅니다. 그런가하면 지금 전혀 사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살고 싶은 의욕이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다들 향하는 삶의 방향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실은 향하는 방향이 뚜렷이 정해지지 않고 헤매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선택하여 공부하면서 가고 있는 길이 실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그렇게 밀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훗날 한 생을 마감할 때 그동안 잘 살았다고, 후회하지 않는 삶이었다고 편안히 눈감을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각기 다른 모두의 삶이 똑같이 행복한 삶이 되려면 분명 어떤 공통된 삶의 가치기준이 있을 법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존재일 수 있는가?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러한 점에 대해서 적어도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입니다. 삶의 의문은 사는 것이 힘들어서 일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겪어야만 하는 죽음이나 소멸 등과 같은 무상한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가 분명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잘 산다는 것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님은, 물질이 넘쳐나는 사치 속에서 자살하는 경우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원하는 대로 다 이루기도 어렵고 되고 싶은 대로 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모두가 잘사는 길이 분명히 있습니다.
과학의 발달이나 물질문명의 혜택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 큰 도움이 됨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잘 산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자기 혼자서 짓는 행위의 결과보다 함께 공동으로 지어가는 행위의 과보가 더 큰 힘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일 것입니다. 종종 대형교통사고나 각종 재해로 대규모 참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우리 모두가 방조하고 참여한 인연의 결과들임을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상호 관련된 관계성이 도외시 될 수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조그만 핸드폰만 해도 그렇습니다. 내 핸드폰만 좋아서는 안 되고 남의 것도 좋아야 통신이 가능하니까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진리가 우리 주변 곳곳에서 과학의 힘을 빌려 더욱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삶, 가치 있는 삶 또한 나와 남이 분리될 수 없습니다. 남의 불행에 의해 보상받는 나의 행복이 아니라, 남의 행복에 의해 증폭되는 나의 행복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자신이 자기 삶의 행복과 불행을 초래케 하는 직접적인 원인(因)이라면 다른 이들은 간접적인 원인인 연(緣)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은 다른 이들의 삶의 연이 됩니다만, 그 연 또한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은 바로 자기 자신, 즉 자기 행위의 주체인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온갖 경계가 다 사라집니다.
남과 걸림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 남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해결해주려는 마음, 남을 즐겁게 해주고 남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는 마음 등, 우리 마음은 본래 그러한 무한한 공덕의 마음입니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내는 청정한 원력의 마음입니다.
화엄경에서도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이다”, “이러이러하게 사유분별하면 이러이러하게 한량없이 나타난다” 라고 교설하고 있습니다. 우리 더불어 사는 지혜와 자비의 마음으로 모두 행복한 삶의 주체가 되려는 원력이 날로 깊어지기 바랍니다.

■ 해주 스님 (전호련)
- 호거산 운문사에서 성관 스님을 은사로 출가.
- 계룡산 동학사 전문강원 졸업.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동 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 대한불교조계종 제 11·12대 중앙종회의원 역임.
- 현재 북악산 수미정사 주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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