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말기 조선을 방문한 선교사 아펜젤러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미개한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제국주의 침략의 한 축을 담당했던 문명화의 담론에서 대한제국의 수도인 서울은 야만의 상징이 된다. 서양 선교사들은 넓은 길과 잘 정돈된 거리, 벽돌로 지어진 높고 밝은 집만이 한 나라의 수도에 걸맞은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활양식이 오랫동안 자연적 질서에 순응하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할 때 서양 선교사들의 생각은 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조선은 자연적인 질서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은 반면에 서양 선교사들의 의식은 근대적인 기계적 질서에 기대고 있다.
(사진:보신각과 전차 1902년 경)

따라서 문명화의 함의(含意)가 ‘서구 따라잡기’ 혹은 ‘서구적 시스템을 내적으로 규율화’하는 것이라면 대한제국의 수도인 서울의 외형은 그 방향성이 결정되어 있는 셈이었다. 1394년 유교적 이념 하에 공간화된 조선왕조의 수도인 서울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공간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00년 동안 조선왕조의 수도로 공간화되었던 서울이 근대적인 도시로 바뀐다는 것은 기존의 공간 구조에서 비롯된 의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대적인 물상들의 등장과 함께 도시의 외연이 확장되고 이에 따른 공간의 재배치가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이자 그 공간 구성원이 새롭게 구성된 질서 의식 속에 포섭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펜젤러의 눈에 부정적으로 보였던 서울의 모습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서구적인 변화를 한 것인지 아니면 비숍 여사의 시각이 다른 것인지는 몰라도 외양의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추측하게 한다. 비숍 여사가 본 서울은 ‘넓어진 도로, 활달해 보이는 산업,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진열장’이었으며 ‘유럽적으로 재건되지 않는 한국적인 외양을 갖춘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공간 구획에 새로운 서구 문명이 유입되면서 근대적인 도시로 바뀌고 있는 서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서울의 변화는 외적으로 신기하고 편리한 기계가 유입되면서 전통적인 공간의식을 해체한다. 특히 도시를 가로지르는 전차가 등장했다는 것은 단순히 문명을 상징화하는 교통수단이 등장했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이를 통해 도시의 외연이 확장되고 서울이라는 공간의식이 확장됨을 의미한다. 거리 감각의 축소를 의미하는 교통망과 전신망의 확충은 서울이라는 공간을 폐쇄적인 공간에서 개방적인 공간으로 변화하게 했던 것이다. 폐쇄를 상징하고 서울이라는 공간을 차별적으로 인식하게 했던 성곽이 허물어지면서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던 서울은 전차로와 자동차 도로를 축으로 재편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도로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한 서울의 모습은 근대를 상징하는 ‘공간-기계’로 변화를 겪는다.
서울은 기계의 용도에 맞게 분할되고 그 구역적 특성이 서울에 있는 구성원들 속에 새로운 공간적 의식으로 내재화된다. 그렇지만 근대적인 공간으로 변모하게 했던 전차를 근대문학 초기 생산자들은 시간의 분절화와 절약이라는 의식 속에서만 보지 않았다. 양건식의 「슬픈 모순」에서 주인공 ‘나’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전차에 오르지는 않는다. ‘나’의 하루 일과의 시작은 바쁜 도시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새벽에 일어나 무료하게 서안(書案)을 맞대고 있던 ‘나’는 오포(午砲) 소리에 맞추어 점심을 차린 어머니의 성화를 뒤로 하고 집에서 나온다. 광희문(光熙門) 행 전차에 오른 ‘나’는 전차에 탄 많은 이들이 내리는 종로(鐘路)에서 자신의 무료함에 멋쩍어 하며 내린다. 일이 있어서 내리지 않았던 터라 그는 다시 동대문 행 전차에 오른다. 그러나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탄 것이 아니기에 사동(寺洞 : 오늘날의 인사동) 병문(屛門)에서 도로 내린다. 그는 근대의 시간을 거슬러 가는 산책자처럼 안동(安洞 : 오늘날의 안국동)으로 걸어가면서 식민지 조선의 수도로 변이된 서울을 관찰한다. 사동은 좌우에 상점이 밀집한 상업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공간이 보기 싫다. 또한 도시를 상징하는 분주함(인력거 소리, 구루마 소리 등)도 고통으로 다가온다. 근대화를 상징하는 자본주의 제도의 한 축을 형성하는 상업의 공간과 여기서 파생하는 소음에 대한 반감은 근대적인 도시의 질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서울의 외양에 대한 부정은 외적인 지향을 보이는 서울 사람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며 이를 통제하는 식민지 권력의 하층부에 대한 냉소로 이어진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화려한 치장을 한 중년의 비대한 부인과 고급 술집에서 외모 때문에 술을 먹지 못하고 소동을 벌인 막벌이꾼과 이를 훈계하는 순사보에 대한 ‘나’의 인식은 식민지 하의 서울과 서울 사람들의 모순적인 자화상이다. 외형적인 근대성을 표상하는 도시라는 공간에서 그 외형에만 침잠한 사람들에 대한 냉소는 근대라는 공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의 자조로만 볼 수 없다. 양건식은 근대인들의 일상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도시적 삶을 근대적인 도시로 전화하는 서울을 통하여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성찰은 식민지 근대화의 압축된 공간인 서울의 모습이 기형적임을 설파하고 있는 셈이다.
김재관<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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