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맛을 모른다’, 그래서 가난도 모른다


요사이 대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행한 세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의식주에서 그들은 절대로 ‘불행한 세대’가 아니다. 그들 앞 세대에 비하면 그들은 유족하기 그지 없다. 한번 돌이켜 보라. 90년대 초이던가, 북쪽의 김일성이 ‘조선 사람은 이밥에 고기 국이면 다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때 남쪽사람들은 모두 귀를 의심하고 의아해 했다. ‘이밥에 고기 국 -겨우 그 정도냐, 아직도 북쪽 사람들은 쌀밥과 고기 국을 못 먹을 정도냐’ 그런 반응이었다. ‘북쪽 사람들이 얼마나 굶주리고 있었는지 당시로서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북쪽 사람들에 비하면 남쪽의 젊은 세대는 절대로 ‘불행한 세대’가 아니다. 밥을 굶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 그 어떤 불행도 굶주림의 불행을 넘어설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남쪽 젊은이들은 그들 앞 세대의 피와 땀 덕분에 ‘행복에 겨운 세대’라고 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이 불쌍하단 말인가. 무엇이 우리 대학생들을 ‘불쌍한 젊은이’로 만들고, 무엇이 그들 세대를 ‘불행한 세대’로 지칭케 한단 말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글 맛을 모른다’. 바로 그것이다. 가장 명백하며 가장 확실한 답은 오늘날 젊은 세대는 정말 ‘글 맛을 모른다’는 그 대답이다. 친면이 있는 대학생들 중 누구든 잡고 한 번 물어 보라. ‘너 글 맛 아니’,그러면 으레 ‘글에 무슨 맛이 있어요, 글이 뭐 음식인가요’할 것이다. 그 대답만큼 ‘너희들은 글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고 힐난해도 조금도 분노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글 맛’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음식 맛 잘 모르는 사람에게 ‘너 미맹(味盲)이구나’한들 부끄러워하거나 분노하겠는가. 맛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만큼 성내거나 부끄러워할 소지도 없다. 그런 심리(心理)가 일어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 맛’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나는 것이 ‘글 맛’인가. 음식 맛처럼 맵기도 하고,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한가. 혹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한가. 하긴 ‘글 맛’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렇게도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매운 글도 있고, 싱거운 글도 있고, 달콤한 글도 있고, 구역질나는 글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음식 맛과 비유되는 ‘글 맛’이 아니라, 읽고 또 읽고 싶은 글을 말한다. 한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 백 번 이백 번, 심지어는 천 번을 읽어도 또 읽고 더 읽고 싶은 글을 말한다. 음식 맛처럼 맛이 없으면 그렇게 읽히지 않기 때문에 ‘글 맛’이라고 한다.
송(宋)나라 때의 유명한 유학자 정자(程子)는 이런 글을 ‘부지 수지무지 족지도지(不知 手之舞之 足之蹈之)’란 말로 표현했다. 그 글을 읽고 난 뒤 그 글에 도취돼서 손은 춤을 추고 발은 뛰금을 뛰는데, 정작 그렇게 하는 본인은 자기가 그렇게 하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고 발을 구른다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도 이런 글은 충분히 설명이 된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입에서 단물이 자꾸 돌고, 그 단물이 향기가 되어 읽을 때마다 입안을 늘 감돌고 있다면, 이런 글이야말로 생물학적으로도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은 어떤 글을 읽는가. 입에 단물이 고이는 그런 글들을 읽을 수 있는가. 물론 교과서에 실린 글들은 좋은 글들이다. 열 번 스무 번은 못 되어도 두 번 세 번은 읽어봄직한 글들이다. 그러나 그 글마저도 잘 읽지 못하고, 시험에 점수를 잘 딸 수 있도록 요약해 놓은 글들만 주로 읽고 접한다. 그것은 글이라고 할 수가 없다. 글은 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생들이 읽고 접하는 그 글들은 하나 같이 말초신경만 건드리는 글들이다. 설혹 시험공부가 아니라 해도, 인터넷 속에서 매니아 되어 읽는 글들도 예외 없이 말초신경적이다. 사상을 담는 매체를 생각하면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깊은 사유의 세계’와는 거리가 아득히 먼 매체다. 어떻든 그런 책 그런 매체에서 글읽기는 고전을 읽고 고전에 심취하는 서구 젊은이들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를 보이는 글읽기다. 이런 면에서 서구 젊은이들은 예나 이제나 다름없이 ‘글 맛’을 알고 ‘글 맛’을 즐긴다. ‘글 맛’을 알고 즐기는데서 내면의 세계가 풍성하게 형성되고, 그 풍성함에서 창조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글 맛’을 모르는 젊은이들은 언제나 문화최빈국의 빈궁상태며 빈한한 상태에서 살아간다.
우리 젊은이들의 그 가난하면서 궁하고, 또한 가난하면서 추위에 떠는 그 일상의 나날들, ―그러나 젊은이들은 ‘글 맛’을 모르는 그만큼 가난도 모르고, 궁함도 모르고 추위도 모른다. 희극 같기도 하고 비극 같기도 하고―.

■약력
-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석사,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사회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사회학전공 정치학박사
- 1983.01∼1984.01 미국 아이오와대 객원교수
- 1992.08∼1993.08 미국 워싱턴대 객원교수
- 1975 이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2002∼ (현)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겸 특별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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