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촛불’이 서울광장에서 타오르기 시작한지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지난 2일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청계광장 또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확대돼, 현재 16개 광역시도별로 1곳 이상에서 매일 오후 촛불이 밝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지난 15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찾아가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얘기를 담아 보았다. <편집자주>

오후 6시 40분, 퇴근길 러시아워로 한창 붐비는 시청역 사거리가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인파들로 더욱 북적거렸다. 덕수궁 돌담길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전경버스와, 집회 현장과는 멀찍이 떨어져 줄 맞춰 서있던 전경들은 현장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이날은 당일 계획됐던 장관고시와 관련해 이에 대한 규탄시위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일어난 촛불의 힘으로 장관고시가 며칠간 연기됐고, 그 결과 기존에 진행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면재협상’을 구호로 촛불문화제가 전날에 이어 열렸다. 문화제현장으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많은 중·고등학생이었다. 인천인화여고 재학 중이라는 이천희(2학년) 양은 오로지 이 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인천에서부터 시청까지 먼 길을 왔다고 했다. 한 손에 촛불을 들고 있던 이 양은 “우리반 친구들을 비롯해 전교생들이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라며 “단체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집회현장 한쪽에서는 ‘다함께’라는 단체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서명운동과 회원접수를 한창 받고 있었다. ‘다함께’ 회원인 이서영(한양대·국문·4) 양은 “‘다함께’는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필요에 의해서만 생산하고 그만큼만 소비하는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며 생산하는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는 단체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들과 어떠한 합의도 도출하지 않고, 실제로 어떠한 배려도 없었던 이번 협상은 반민주주의 잔상이라고 생각해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라고 전했다. 오후 7시가 되자 1700여 시민사회단체와 인터넷 모임으로 구성된 ‘광우병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긴급대책회의’ 주도로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해가 길어져 아직은 밝았던 시청 앞 서울광장이 점차 촛불로 물들어 갔다.

“오늘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활활 타고 있습니다. 전국 74군데에서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장관고시 연기를 넘어 협상 전면 철회로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고려대를 다니는 김지윤(사회학·4) 양의 힘찬 멘트로 촛불문화제 현장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김 양은 이날 촛불문화제의 사회를 맡아 내내 트럭 위 단상 앞을 지키며 시민들을 이끌었다. 김 양은 “전국을 흔드는 촛불집회의 힘이라면 협상 완전무효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김 양의 발언에 이어 “맛도 좋고 영양 좋은 한우였는데 광우병쇠고기에 한우 못 먹어. 딴 나라 사람들은 거절했는데 개방한 우리 머리에 모두다 구멍이~”라는 자극적인 가사의 광우송이 서울광장에 울려 퍼졌다.

촛불문화제는 시민자유발언으로 이어졌다. 처음으로 발언대에 나선 이는 여고생이었다. 여고생은 “우리는 공부를 해서 지식인이 되어 지금의 정부 관계자와 같은 사람이 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라고 외치며 “우리는 연예인을 따라 온 것도 아니고 정부보다 훨씬 똑똑해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라고 당당히 소리 높였다. 이에 한 시민은 “중·고등학생의 촛불문화제 참가에 대한 제제가 특공전략을 방불케 한다고 들었는데 용기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라며 감탄했다.

또 다른 시민은 “정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감정에 잘 치우치고 그네들이 하는 일은 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3·1 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 열사의 당시 나이도 17살이었고, 4·19혁명을 촉발시킨 3·15부정선거 관련 시위를 주도했던 이들도 대구 등지의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이곳에 자리한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라며 박수를 보냈다.

여고생 발언이 끝나자 사람들은 ‘미친소 너나 먹어’, ‘협상은 무효다’, ‘고시를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촛불을 높이 들었고, 이어 장구소리와 목탁소리가 광장 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은 인천불교인권위원회 부위원장인 밀행스님이었다. 밀행스님은 “정부가 기본적으로 국민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 국민을 이해시켜야 할 의무를 어기고 국민을 무시한 까닭에, 주권을 지키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머슴론을 논하던 이 대통령이 주인마음 모르는 눈치없는 머슴인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어둑해진 집회현장은 촛불 빛으로 빨갛게 물들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옆 사람에게 촛불을 전달하는 훈훈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불을 붙인 사람들은 일제히 머리 위로 촛불을 들어 올렸고 너나 없이 하나 되어 촛불 물결을 만들어냈다. 집회현장 곳곳에는 소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이들은 피로하고 감정이 격해진 집회참여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추억을 선물해주고 있었다.

소 복장을 입고 있던 곽효준(성공회대·사회복지·4) 군은 자신을 ‘민주노동당의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실천단’이라고 소개하며 “시민들에게 광우병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재미없는 촛불집회에서 재미를 주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소 복장을 하게 됐습니다”고 전했다. ‘광우병괴담’에 대해 곽 군은 “명확한 설명 없이 전면수입을 결정한 정부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과학적 증명도 없이, 논리력이 떨어지는 이유 때문에 파생된 것으로 이조차 정부의 안일한 대응 탓입니다”라고 말했다.

문화제 한편에서 홀로 촛불을 밝히고 있었던 박희진(중앙대·일어일문·휴학) 양은 촛불문화제에 5번째 참여하고 하는 중이라고 했다. 박 양은 인천에서부터 서울광장까지 대규모집회가 있는 날이면 몇 시간이 걸리는 데도 현장을 찾고 있었다. 박 양은 “대학생 참여가 적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중, 고등학생에 비해 대학생들이 오히려 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가”를 우려했다. 또 ‘광우병괴담’이라는 정부주장에 “광우병과 관련해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중권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생명에 지장을 주는 담배의 경우에는 선택권이라도 주어지는데 이 경우 안 먹어도 걸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데서 대중이 혼란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좌파다 우파다라고 정치적 판단으로 보는 것보다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이라는 생각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새 현장은 수많은 취재진과 학생, 주부, 직장인, 노인, 어린아이들로 가득 찼다. 세살배기 아이와 함께 촛불문화제 현장을 찾은 박정주(광진구·34세) 주부는 “전면재협상을 통해 그나마 안전하다는 30개월 미만의 소를 수입하든지 해서 우리의 먹거리가 안전해지고, 그로써 우리아이에게 마음 편안히 음식을 줄 수 있게 되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이명박 OUT’ 등과 같은 문구를 담은 피켓들이 집회현장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구호를 들고 있던 오갑수(은평구·69세) 할아버지는 “오늘로 3번째 집회에 참여합니다. 어제 경찰통계로 1만5000명이 모였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엔 2만 명이 충분히 넘었습니다”라며 “저는 손녀, 손자에게 미친 소를 먹일 수 없어 이 자리에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시간 여 동안 진행된 이날 집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마찰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그곳에는 광우병괴담에 광적으로 휩싸인 사람도, 배후세력을 바탕에 둔 고등학생도, 분위기를 조장하고자 모여든 바람쟁이도 없었다. 모든 시민들은 자신의 먹거리 안전성에 위협을 느끼고 주권을 지키고자 모여들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취재기자가 인터뷰했던 많은 시민들이 어느 정도 광우병에 대해 과장이 존재함을 알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여과해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디선가 모여 촛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저희도 다 알아요”, “급식에 나오면 학교가기 싫어질 것 같아요”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초등학생도, “저희도 이 나라 국민이고 사회를 배우는, 알 것은 다 아는 주권자입니다”라고 말하던 고등학생도, “나는 죽으면 그만이지만 우리 자식, 자식의 자식들은 다 어떻게 하겠어”라고 걱정하던 할아버지도, 모두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같은 자리를 지키며 촛불을 머리 위로 들 것이다.

김은희 기자  mamorikami@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