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20만 인구 빈민은 18만이었다

왜인 거주 남촌만 풍요, 북촌 퇴락
이때부터 서울은 이미 2:8의 사회

“자, 인제부터는 내가 서울서 지내온 일, 또는 앞으로 지내어 가는 모양, 그것을 대강 적어 보자”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포석 조명희의 단편 <땅 속으로>(1925)는 1920년대 서울을 읽는 기초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땅 속으로>가 포석이 최초로 쓴 단편 소설이라는데 주목을 하면 작가의 경험이 일정부분 반영되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이 텍스트의 주인공 ‘나’는 농촌 출신의 동경유학생이며 시인인데, 이는 포석의 개인사와 유사하다. 즉 ‘나’는 포석의 분신처럼 읽을 수 있다. 이런 작가론적 측면으로 텍스트를 살펴보면 텍스트와 당대 현실 관계를 무매개적인 반영으로 읽게 된다.

서울은 20만 인구의 도회로서 무직업한 빈민이 18만이라는 말은 신문기사를 보고 알았지마는 세계지도 가운데 이러한 데가 또 있거던 있다고 가르켜 내어 보아라. 말만 들어도 곧 아사자, 걸식자가 길에 널린 것 같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셈으로 20만 인구에 걸식자가 18만.
나도 물론 이 거대한 걸식단 가운데 신래자(新來者)의 한사람이 되었다. (p.73)

그럼 ‘땅 속에서’ 그려지는 2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인가? 어떤 모습인가?

서울의 20만 인구 중에 18만이 걸식자. 주인공 ‘나’의 눈에는 서울이 빈궁의 도시로만 보인다. 이러한 ‘나’의 시각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일제의 식민지 경제 정책은 이중의 착취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식민지 조선의 미곡과 원자재를 헐값으로 매입하고, 그 원료로 만든 제품을 다시 비싼 값으로 되팔아 한반도 내의 재화는 점점 일제의 손으로 넘어갔다. 총독부는 조선 농민을 몰락시킨 토지 조사 사업 이외에도 임업, 어업, 광업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철저한 착취 정책을 폈다. 한반도 내의 모든 경제 활동은 일제가 설립한 금융 조합, 농공은행 등에 의해서 통제되었고, 민족 기업을 규제하기 위하여 회사령을 제정, 공포하였다. 당연히 조선의 민족자본은 위축되고 식민지 경제 또한 파행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1920년대 서울은 이러한 식민지 모순이 직접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서울이 궁핍의 공간이듯이 고향 집도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집에는 싸움이 많다더니 사람들이 모두 악만 남아 그러한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걸핏하면 싸움질을 일’삼는 난장판 같은 고향집. 고향집 식구들은 내가 서울 가서 변호사가 되거나 군수나 도장관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식민지 지식인의 양심을 지키려는 ‘나’는 식구들의 이러한 바램을 묵살할 수밖에 없다. 고향 집은 또한 끔찍한 아내가 있는 공간이다. 사랑이 아니라 관습이 맺어준 아내와는 부부간의 정이 있을 수 없다. 가난과 조혼이라는 봉건적인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상경한 주인공 ‘나’에게 서울은 또 다른 시련을 준비하고 있다.

남촌이라는 이방인 집단지의 특수지대를 제해 놓고 그 외는 다 퇴락하여 가는 옛 건물, 영쇠하여 가는 거리거리, 바짝 마른 먼지 냄새로 꽉 찬 듯한 기분 속에서 날로날로 더 패멸 조잔의 운명의 길로 도라 가는 서울이란 이 땅, 아니 전 조선이라는 이 땅, 그 속에 굼질대는 백의인-빈사 상태에 빠진 기아군.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다! 이 사막에는 이 초지(草地)에는 아무 것도 없다. 마른 땅과 마른 뼈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주인공 ‘나’가 신래자로 도착한 서울은 퇴락한 건물, 빈사상태의 백의인 등 패멸조잔의 운명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서울 전체가 퇴영의 그림자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의 날카로운 눈에는 남촌의 풍요가 포착된다. 왜인들의 거주지. 서울의 근대화는 조선인들의 터전인 북촌을 소외시키면서 시작되었다. 이제 서울의 주인은 총독부였고 왜인들이었다.
이 속에서 식민지 지식인 ‘나’의 행로는 정상적일 수가 없었다. 식민지 시인이 발 디디고 살 수 있는 공간은 서울에는 없었다. 이런 ‘나’에게 설상가상으로 처자식까지 찾아온다. 하지만 혹처럼 여겼던 처자식에게서 처음으로 육친의 정을 느끼게 된다. 혹독한 빈궁 속에서 인간적인 정이 되살아 난 것이다. 주인공 ‘나’는 굶주리는 자식들을 위하여 시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책사에게 시집 초고의 판권을 팔고 경멸하던 H에게 돈을 꾸는 등 모든 노력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무서운 외적 생활을 압박 때문에 내적 생활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무산대중의 고통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우로 말고 아래로 파들어 가자’는 실천논리를 확립을 한다.
하지만 서울은 냉혹한 공간이었다. ‘나’는 수탈과 빈궁의 터전인 서울을 텅 빈 사막이나 초지로 인식을 한다. 죽음과 불이 내리길 갈망한다. 그리고 죽음의 구덩이에서 춤을 추고 싶다고 한다. 점점 ‘나’의 생각은 극단적으로 변모하고 강도가 되는 고약한 꿈까지 꾸게 된다.
이러한 결말 처리는 자연발생기 프로문학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박영희나 최서해의 소설들과 유사하다.
1925년은 카프가 결성되었고 지식인들 사이에 프롤레타리아 의식이 광범위하게 유포되던 시기였다. <땅 속으로>는 카프,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란 담론 안에서 읽혀진다. 포석은 서울이 가지고 있는 식민지 근대도시 모순을 지식인 주인공 ‘나’를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텍스트에서 ‘나’의 비참한 서울 생활이 단순한 허구로 읽혀지지 않는다. 문학은 항상 역사 속에서 유영하기 때문이다.
장두식<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