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빌딩, 현란한 간판들.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자란 풍경이기에 애초부터 적응이란게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모습이련만, 높디 높은 빌딩과 형형색색의 간판들을 보면 가끔 어질어질하기도 한다.

이런 도심 속 한가운데 옛 전통가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남산골 한옥마을’이다. 지난 8일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빡빡한 도심 속 휴식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입장료가 없는 남산골 한옥마을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건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였다.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부터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커플, 마실 나오신 어르신들까지. 또 영어권 국가와 중국, 일본 등에서 관광을 하러온 외국인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기자를 맞이 한 것은 ‘천우각 광장’이었다. 꽤 커다란 연못과 연못 앞에는 관광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천우각’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마침 날씨가 더워서인지 연못을 바라보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잠시 ‘천우각’에서 땡볕을 피하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전통공예관’이었다. ‘전통공예관’안에 들어서자 마치 아기자기한 미니 부채 박물관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공예관 안에는 합죽선, 태극선, 민화부채 등 무형문화재 장인들이 만들어낸 종류별 부채가 전시돼 있었다. 전통공예관 출구로 나오자 옛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공동마당이 자리해 있었다. 투호던지기, 윷놀이, 제기차기 등을 체험해보는 사람들은 서툴지만 즐거워 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대한 가옥은 순정효황후 윤씨의 친가였다. 조선 제 27대 순종의 황후인 윤씨가 동궁계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가옥안에는 당시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게끔 화초장, 물레, 디딤돌까지 조선시대의 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전통가옥을 둘러보면서 형형색색의 간판을 달고 있는 요즘 건물들에서 느낄 수 없는 소박한 멋이 느껴졌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에서 나와 부마도위 박영효의 가옥에 들어섰을때, 마침 외국인 신부와 한국인 신랑의 전통혼례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랑신부의 일가 친척들 뿐만 아니라 한옥마을에 온 일반 관광객들까지 전통혼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치루는 것이 흔치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외국인 신부의 실수는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전통혼례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위장 김춘영 가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춘영 가옥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맷돌로 콩을 갈고 있는 모습이었다. 맷돌로 콩을 가는 어린이의 얼굴에서는 왠지모를 뿌듯함이 보였다. 바로 옆에서는 순두부를 만들고 있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한 그릇에 1000원이면 방금 맷돌로 갈은 콩으로 만든 순두부를 맛볼 수 있다. 처마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호호 불며 순두부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공동마당과 각 가옥에서는 저녁 시간대에 상설행사가 열린다. 오후 6시부터 박영효 가옥에서는 정화수를 놓고 남산골 달님, 별님에게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행사가 열린다. 같은 시각 윤택영 가옥일대에서는 전통조형등을 전시한다. 역시 같은 시각 공동마당에서는 전통방식으로 한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행사도 진행된다. 매주 주말저녁 천우각 무대에서 타악콘서트, 줄타기, 탈춤 등 각기 다른 주제의 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고층빌딩과 형형색색의 간판의 도심속에서 갑갑함을 느꼈다면 조금만 눈을 돌려보자. 그곳에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정갈한 멋을 느낄 수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이 기다리고 있다.

·위치-지하철 충무로역 3번출구로 나와 중대부속병원과 매일경제 미디어센터 사잇길로 직진.
·개방시간-3월에서 10월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11월에서 2월은 오후 8시까지 개방.

이민경 기자  passion529@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