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를 보면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 한적한 시간에도 거리를 지나는 차들이 교통신호등을 철저히 지키는 장면을 심심찮게 보았을 것이다.
범죄 관련 혹은 때려부수는 장르의 영화에서 백인경찰관이 탄 자동차가 불을 번쩍이고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신나게 뒤 쫓을때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며 마구잡이로 달리는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국사람들은 성품이 좋아서 남을 배려하고 양심적으로 질서를 잘 지키는 줄 알았다.

미국 L.A에서 1년 남짓 지내고있는 나도 이제는 밤 12시가 넘어 지나는 사람은 물론 자동차 한대 없어도 빨간 신호등이면 어김없이 선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잘 지키고 있다. 멈춤 표시가 있으면 먼저 온 차를 먼저 보낸 다음에 내가 가고, 뻥 뚫린 프리웨이를 달리는 순간에도 속도계를 곁눈질하며 지정속도를 지키는 것이 몸에 배었다. 성질이 썩 좋다고 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미국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퇴근길에 네거리에서 서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새 명백한 신호위반을 하였다. 누가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가는데 곧 경찰 차가 따라붙었다. 재수도 어지간하게 없다는 생각을 순간 했지만 이것도 경험이라고 고쳐먹었다. 한참 있다가-10분이 훨씬 넘는 시간. 이때 경찰은 차량번호를 조회해서 범죄사항을 체크하고 운전자 내력까지 조회를 끝낸다.-다가와서 면허증과 등록증, 보험증서 이렇게 세 가지를 요구한다. 그러면 당신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위반을 하였다고 하며 딱지를 끊어준다. 이런 저런 말이 필요 없다.

이의가 있으면 2주 이내에 관할 법원으로 나간다고 통보를 하면 티켓을 발부한 그 경찰과 판사 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어있다. 마침 경찰관이 출석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이기지만 나오게 되면 대부분의 판사는 경찰관 손을 들어준다. 그리고 거의 출석을 한다고 한다. 위반을 했으니 가봐야 소용이 없다. 그 날이 지나면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온다. 보는 순간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다. 자그마치 벌금이 271달러이니 말이다. 이것을 한국 돈으로 바꾸면 얼마인가.

그리고 벌점도 먹어야한다. 벌점이 있으면 가뜩이나 비싼 보험료가 턱없이 많이 올라간다. 그래서 생긴 것이 ‘트래픽스쿨’(교통위반자학교)이다. 수강료 30달러를 내고 8시간 동안 쭈그리고 앉아 재미없는 교육을 받으면 벌점을 까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딱지를 뗄 때마다 ‘트래픽스쿨’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8개월 동안 단 한번만 인정이 된다. 돈도 돈이지만 남들 노는 시간에 8시간이나 투자를 한다는 것이 보통 아까운 것이 아니다.

행여 음주운전을 하다 걸리면 보통 1만 달러정도 깨지고 30일 동안 운전을 하지못한다. 신발 없이는 살아도 자동차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이곳에서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1만 달러면 얼마인가. 조금이라도 술을 먹고는 운전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략 1억대 이상의 자동차가 굴러다닌다는 미국 땅에선 이렇게 교통법규를 지켜야 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진천규 동우<L.A 미주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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