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힘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관객의 참여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하는 설치 작업을 주로 해온 멕시코 출신의 라파엘 로자노 헴머(1967- )는 2000년 12월 26일부터 다음해 1월7일까지 멕시코시티의 조칼로광장(Zocalo square)에서 하늘을 아름다운 빛의 조각으로 수놓은 <Vectorial elevation>을 선보였다. 조칼로광장은 멕시코시티의 중심지로서 국회, 시청, 대성당(Templo Mayor)이 위치해 있고, 최근에 그 지하에서 아즈텍신전과 도시의 폐허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장소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하여 펼쳐진 이 대형 프로젝트는 18개의 로봇식 탐조등(seach light)을 이용하며, 그 광선의 높이는 15km정도까지 올라가고 매 8초마다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으로 바뀌게 된다. 실로 감동적인 규모라 할 정도의 빛의 설치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디자인’은 웹사이트를 접속한 네티즌들의 작품이다. 접속자들은 탐조등의 방향과 어떤 각도로 빛이 나아가는지 미리 볼 수 있는 사실상의 모형 프로그램을 통하여, 마우스의 브라우징, 터치 등으로 링크되게 만들어진 이미지나 텍스트 등을 클릭 혹은 터치함으로서 웹 상의 이미지와 내용 등을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체험하게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그 광선들이 탐조등에 의해 상공에 나타날 때는, 한쪽에서는 참가자의 이름과 주소 등이 스크린에 나타나게 된다. 광선의 모양은 흡사 지구의 거대한 통신망을 상징하는 듯 모습으로 느껴지며, 계속 변하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 행사는 현지의 시민들과 원격지의 네티즌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했다. 행사기간동안 모든 것들은 실시간으로 방송되었으며, 63개국에서 30만 명의 참가자들이 약 350만개의 파일을 전송했다. 각 도메인별 참여율을 살펴보면 ES 47%, COM 19%, NET 12% 순이고, 지역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 11%, 유럽 6%, 기타 5% 그리고 언어별로 스페인 67% 영어 29% 기타 4% 의 참가율을 보였다. 또 89개국의 총80만 명이 이 웹사이트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상호작용적인 설치(Interactive Installation)이면서 동시에 웹 아트(Web Art)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수가 동시에 온라인으로 공간의 제약 없이 참여할 수 있으며, 또한 작가와 사용자가 가질 수 있는 ‘개방성’을 중심으로 작가는 더 이상 작품 이미지에 대한 독점적인 소유권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즉, 작품의 내용과 이미지는 사용자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변용과 차용’이 가능하게 열려지는 것이다. 이 ‘개방성’ 은 무한한 진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좀 더 개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어떠한 힘(power)에도 종속되지 않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원곤  <서양화전공>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