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는 대학이나 직장, 군대 등 기관이나 단체의 구성원으로 새로 들어가게 되면 소위 ‘신고식’이라는 것을 한다. 신고방법이나 절차 등에 있어서 각기 차이는 있지만, 대학이나 직장에서는 신입생이나 신입사원에게 흔히 ‘술마시기’ 등의 신고식을 강요한다. 군대에서도 지금은 없어졌지만, 80년대까지만해도 신병에게 얼차례나 몽둥이 찜질 등을 시작으로 다양한 신고식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 역시 군복무시절 신병으로 전입온지 1주후, 새벽에 고참들에게 으슥한 곳으로 끌려가 군기를 잔득 잡힌 상태에서 군화발로 명치를 서너번 맞은후 신고식을 치룬 경험이 있다. 석사를 마치고 늦게 입대해 힘들었는데다, 6~7살 아래인 고참들에게 구타까지 당하니 너무도 서럽고 분해 남몰래 눈물을 씹어(?) 삼킨 적이 있었다.
어느 조직사회에서나 신고식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혹한 신고식 때문에 사람이 숨졌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불과 몇년 전만해도 대학입학시즌인 3월이 되면 TV나 신문을 통해 신입생 환영MT나 동아리 신입회원의 신고식때, 선배들의 강요에 의해 행해지는 ‘무대포식(?) 무한정 술마시기’ 등의 가혹한 신고식으로 인해 신입생이 숨졌다는 사실을 종종 접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매스컴은 난리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직장의 신입사원 신고식때에도 간혹 발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올 9월 16일자 모일간지 기사 가운데 미국 뉴욕주립대의 어떤 남학생 동아리 신입회원 신고식에서 한 신입생이 물마시기 신고의식시 선배들의 강요에 못이겨 토할때까지 거듭해 물을 마셨다가 숨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술을 마시든, 물을 마시든 어찌 되었든 간에 이러한 신고식이 무슨 범세계적인 풍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도가 지나쳐 이로 인해 멀쩡한 성인 남학생이 죽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악습은 선조때 신참자 신고식에서도 행해졌는데,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대략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교리 이이(李珥)가 ‘새로 급제한 사람을 포악스럽게 다루고 모욕을 주는 것이 풍기를 손상시키는 병폐라’고 진술하자, 주상께서 ‘이는 참으로 말도 안된다. 그 병폐를 금하도록 하라’하셨다.…전교하시기를 ‘새로 과거에 급제한 자에게는 사관(四館:성균관·홍문관·예문관·춘추관)이 새로 들어왔다고 지목하고 갖은 침학(侵虐)과 욕을 보여 못할 짓이 없어 시궁창의 더러운 진흙을 그 얼굴에 바르고 당경분(唐卿粉)이라 하고, 관복을 찢고 구정물 속에 집어넣어 귀신처럼 흉측한 꼴을 만드니 차마 사람이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몸이 상하여 병이 드는 자가 자주 생겨 체모에 대한 손상이 실로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이같은 폐습은 예문(禮文)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없는 일인데 관습이 되어 떳떳한 것처럼 되어버려 전혀 고칠 줄을 모르니 무식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는 신구간(新舊間)에 이를 바로잡고 살필 것이며, 더럽히고 침학하며 희롱하는 일을 일체 엄히 고치도록 하라. 만약 옛 습관을 그대로 인습하는 자는 적발하여 죄를 다스리도록 예조(禮曹)에 이르노라’하셨다.…신래(新來:신급제자)를 침학하고 욕보이는 일은 나도 지난날 여러번 명공현사(名公賢士)들에게 말했던 사실이다.”
선조가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로 임명된 신참자의 신고식이 너무 가혹하여 심각하다는 보고를 받고, 그 병폐를 바로잡으라는 전교를 기록한 대목이다. 선조의 이러한 엄금지시는 신임관리들에 대한 신고식이 너무 심해 부상까지 당하고, 예문이나 중국에도 없는 이같은 신고식이 마치 관습처럼 되다시피하자,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신래’의 폐단은 당시의 관리들 사이에서도 골칫거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터 이같은 풍습이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유희춘은 선조의 엄금지시를 전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대학의 신입생 신고식이나 동아리 신입회원 신고식, 직장의 신입사원 신고식 등은 신참자 신고식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60·70년대 중·고등학교 졸업식때 행해졌던 ‘교복에 밀가루 뒤집어쓰기’, ‘교복찢기’ 등도 이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신참자 신고식도 있지만, 이를 면하는 면신(免新)도 고려말부터 있었던 듯하다. 이로써 짐작컨대 신참자 신고식도 고려말부터 행해졌던 것 같다.
신고식은 조직사회에서는 필요악인지도 모른다. 신입생이나 신입사원이 선배나 상급자에게 자신을 알리고, 조직의 화합과 단결 등을 도모하는 면도 있는 바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신고식이 너무 지나쳐 그 폐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차라리 안한 것만 못하다. 항상 적당한 선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합리적으로 행하는 신고식이라면 그 누가 반대하겠는가?
<송재용>  (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