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쟁점
농산물 개방

정부 전면개방 대비한 장기정책 조속히 마련해야

‘농민들의 말을 듣자니 수출이 죽고, 수출을 하자니 농민이 죽는다’ 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지난 14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각료 회의가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정부조달 투명성과 무역원활화, 투자, 경쟁정책 등 이른바 4개 ‘싱가포르 이슈’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놓고 선진국과 개도국들이 팽팽하게 맞서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농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논의하는 도하개발 아젠다(DDA) 농업협상은 예상보다 다소 일정이 지연 됐다. 또, 2006년부터 농산물과 비 농산물, 서비스· 규범 등의 새로운 뉴라운드를 출범시키겠다는 당초 일정도 늦어질 전망이다.
새로운 통상질서(뉴라운드)의 핵심인 DDA농업협상 타결이 지원될 경우, 한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문제해결’에 시간을 벌겠지만, 농산물 시장 전면 개방은 불가피 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시각이다. 이는 지난 13일 나온 각료선언문 초안이 향후 DDA농업 협상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즉 각국은 지금까지 합의한 개방안을 바탕으로 다음회의인 제네바에서 협상을 계속하게 된다.
우리나라 농업계는 DDA 농업 협상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해 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1백80여명이 투쟁단을 조직해 이번 각료회의 기간 중 칸쿤 현지에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11일은 투쟁단에 참가했던 농민 이경해(56)씨가 칸쿤 현지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흉기로 자신의 가슴을 찔러 목숨을 끊어 국내외에 큰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이와 함께 쌀 시장 개방은 이번 칸쿤 각료회의의 결과와 관계없이, 우루과이라운드 협약에 따라 내년부터 불가피해 농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예외 없는 관세화’를 결정한 UR협약에서 내년까지 관세화를 유예 받았다. 하지만 2005년부터는 ‘쌀의 관세화 유예’ 또는 ‘쌀의 관세화’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DDA협상 관련, 각료회의 선언문이 결렬 되면서 둘의 선택 기준이 모호해지게 됐다.
결국 정부는 쌀 수출국인 미국·중국·호주 등과 WTO틀 안에서 개별 협상을 한다는 원칙만 세워놓은 상태다. 앞으로 한국 농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올해 우리나라 농업은 유례없는 흉작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초강력 태풍 피해까지 겹쳐 한국의 농촌이 순식간에 황폐화 됐다. 이와 같이 힘든 시기에, 농업개방 사안과 맞물려, 꿋꿋이 일어 설수 있게 하는 정신적인 힘이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개방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농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지난해 농업생산액은 2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4%였다. 1990년의 7.3%에서 절반 이하로 농업 비중이 줄어든 것이다. 또, 농가 인구는 359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5%다. 이 역시 1990년의 15.5%에서 크게 낮아진 수치다. 더욱이 농가 인구의 52%가 50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되어 있어 앞으로 농업 비중은 계속 줄어들고, 경쟁력 또한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더해 칸쿤에서 목숨을 끊은 농민 이경해씨의 소식은 농민 뿐 만 아니라 대학생들의 마음에도 찹찹함을 감추지 못하게 했다.
이번에 결렬된 각료회의는 우리의 통상환경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미국·일본등이 앞으로 양자간 무역협정을 더 중시할 경우 한국상품은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회의결과에서 유추 해볼 수 있듯이 농산물 개방은 대세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거스르는 것보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정부는 한국 농업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 지를 직시하고,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
<길지혜 기자>  tameyou@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