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한
<문과대학장, 국어국문학전공>교수

국내 4년제 대학들이 학부제로 신입생을 선발한지도 어언 8년여 세월이 흘렀다. 일률적이지는 않지만 90년대 중반무렵부터이니 그리된다. 8년이라면 4개학번의 학생들이 졸업을 한 셈이다. 따라서 이제 그 공과를 따져 개혁을 모색할 시기가 왔다.
학부제제도는 시작 전부터 논란이 많았다. 학생들에게 보다 폭넓은 교육기회를 준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지만, 그 보다는 학문별 서열화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컸다. 이를테면 경상계열의 경우 경제학보다 경영·무역학에 학생들이 편중되고, 인문계열의 경우 문학·역사학·철학보다 도구학문인 외국어학에 치중하게 되는 경우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이지만 문과대의 경우 취업과 관련하여 인기가 없는 어느 정공은 신청학생이 적어 폐과 직전에 있다. 또 어느 전공들은 전공학문체계상 꼭 필요한 교수를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공학생수가 적어 교수대비 학생수를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기가 있는 전공의 경우는 피해가 없을까.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 전공의 경우 학생들이 너도나도 몰리다 보니 분반하기 다반사이고, 양질의 교육은 꿈조차 꾸기 힘들다. 어디 그뿐인가. 학생의 경우 전공학점이 반으로 줄어들어 체계적인 전공지식 습득은 접어두어야 한다. 졸업이수 학점 140학점 중 전공이수 학점이 35학점이면 되기에 나머지는 잡다한 과목으로 채우기 일쑤이다(우리대학의 경우 복수전공을 의무화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어느 지방대학 학생의 경우, 통학이 힘들어서인지 일주일 중 이틀에 맞추어 시간표를 짠다고 한다. 남학생이 ‘여성생리학’까지 들어가면서 말이다. 과연 이래도 될까.
그동안 대학이 추구해왔던 전인적 인격형성은 이제 허울뿐이다. “대학은 이성과 진리의 전당이다.”란말은 신화시대의 말처럼 들린다. 이대로라면 ''''직업훈련양성소''''구실도 제대로 못한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사물이 극에 달하면 필히 회복된다”는 말이다. 변증법의 이치와도 통하는 말이다. 이제 모순은 극대화되었으니 필히 극복해야될 시기가 되었다. 개혁만이 살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극복방안은 무엇일까. 먼저 대학은 의도적으로 기초학문 분야를 육성해야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대학은 경제논리에 입각해 실용성이 떨어지는 순수학문에 대해 그 가치를 망각하고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이 외면당하는 상황이 수요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기초 또는 순수학문의 발전없이는 합리적인 사고와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없다.
전자(電子)를 발견한 톰슨은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만일 석기시대에 응용연구만을 지원했다면 아마도 대단히 정교한 돌도끼를 만들어 냈겠지만 금속도끼는 만들지 못했을것이다.”라고.

진화론의 찰스다윈은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시를 읽으며 몹시 기뻐하였다. 세익스피어에서도 강렬한 즐거움을 느꼈다. 나는 또 그림이며 음악도 즐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시를 단 한줄 읽기도 역겨워졌다. 음악에 대한 흥미도 잃었다.” 왜냐고? 너무 엄청난 자료며 지식들만을 수집해 그 속에서 일반법칙을 찾는데만 몰두하다 보니 기계적으로 변한 것이다. 그는 “이런 취미의 상실은 행복의 상실이 된다. 그리고 감정적인 능력의 약화는 인간의 지성이며 덕성에 해를 가져다 준다”고 결론을 맺는다.
영국학술원 부원장인 존·모릴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대학생 취업에 있어서 영국의 경우 “오히려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종합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 때문에 고용주들이 더 선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문학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배경지식을 제공함으로써 학문간의 통합과 연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인문학은 전공을 넘어 전체학생들의 기초교양이 되어야 한다.
어느 대학에나 교양학부가 있다. 그러나 유명무실하여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학부제가 성공하려면 교양학부가 제구실을 하여 받쳐주어야만 한다. 교양과목도 지금처럼 병렬식으로 좌판을 벌여놓아서는 안된다. 대학교육은 체계가 중요하다. 일정한 목표와 체계를 갖춘 교양교육이 꼭 필요하다. "진정한 교육은 정답이 아니라 올바르게 묻는 법을 가르친다."라는 말이 있다. 교양교육을 통해 올바르게 묻는 법을 배워 전공에 임하여야 된다.
더불어 정부의 교육정책에 각성이 있어야 한다. 보다 폭넓은 교육기회를 주려면 140학점으로는 모자란다. 20∼30학점을 더 늘려서 전공별 장벽을 허물고 의무적으로 2개 이상의 전공을 택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들 또한 복수전공자를 우대하여야 한다. 사실 실험에 의하면 4년동안에 학생들이 140학점을 충실히 이수하는데 필요한 일수는 97일, 즉 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48개월(4년)중 3개월동안 공부를 하고 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이수학점수의 증가와 복수전공의 의무화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밖에도 학부제 제도보완을 위한 좀더 심도있는 아젠다는 많겠지만 문제제기로 출발점을 삼는다 .
<신종한>  <문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