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통령의 권위와 언행, 언론대응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대통령의 권위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는 것은, 필자가 대학을 다녔던 유신시절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달라지고 좋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대통령이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이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하기만 하다. 누구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필자처럼 정치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 전직대통령 재임시절, 야당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던 사실을 매스컴(특히 신문)을 통해 접했던 기억이 난다. 헌데 지금은 대통령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야당이나 일부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니 도무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머리가 어지럽기만 하다.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그 원인이나 이유에 대해 관심도 알 생각도 별로 없다. 다만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지금과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선조 때 을미·정미년 피죄인(被罪人)들의 신원복작(伸寃復爵)을 둘러싼 군신간의 논쟁이 있었다. 수개월에 걸친 군신간의 논쟁에 분노한 선조는 ‘군약신강(君弱臣强:임금은 약하고 신하는 강함)하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날 아침 삼공과 동·서벽의 신하들이 계를 올리기를…‘을사년의 일은 비록 가볍게 말할 수 없다 할지라도 정미년의 옥사는 모두가 정언각이 쓸데없이 양재역벽서에 나붙은 꾸며 만든 말을 취한데서 생긴 것이요, 기유년은 옥사를 일으킨 간사한 자가 공을 세우려고 임금께 고변한 말입니다. 조정과 민간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억울함을 훤히 알고 씻어주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미년에 죄를 입은 무리 중에 비록 적몰의 죄를 면한 자라도 아직까지 복작의 은혜를 받지 못하였고, 기유년에 억울하게 죽은 자는 적몰된 재산을 돌려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시 직첩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이 원통해 함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합니다. 하늘의 분노가 그치지 않는 것이 아마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감히 아뢰오니 정미·기유년 두 해에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에게 모두 직첩을 돌려주시고 적몰했던 물건도 돌려주어 중망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어 위로 하늘의 꾸지람에 답하소서’하였다.…주상께서 답하시기를 ‘변이가 일어난 것은 실로 부족한 몸이 실덕을 한 때문이니 이미 지나간 두 해의 일을 논하는 것은 안되오.…날마다 와서 아뢰어도 나는 따르지 않을 것이니 경들만 수고를 할 것 같소’하셨다.…주상께서 옥당에 답하시기를 ‘임금이 약하고 신하가 강해서 목성이 낮에 나타난 것이다’하셨다. 군약신강이란 말이 지극히 미안해서 승정원에서 미안하다고 여쭈었더니 주상께서 답하시기를 ‘이는 물어볼 말이 아니다. 그대로 전하라’하셨다.…양사가 전원 대궐로 나아가 계하기를 ‘을사의 일은 수십년 전에 울분이 쌓여온 것으로서 만인의 마음에서 격발한 것인데도 주상께서 굳이 거절을 하시어 이제 반년이 되고 사람의 뜻을 헤아려주지 않으시니 신 등은 주상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청컨대 더 살피시고 생각하시어 어서 윤허의 말씀을 주소서’하였다.…대답하시기를 ‘윤허하지 않겠다’하시자, 재차 계를 올리니 주상께서 답하시기를 ‘유인숙 등은 특별히 청하는 바를 윤허하여 역당의 이름을 씻어주고 그 적몰한 물건을 돌려주게 하라. 마땅히 이를 알고 짐작해서 시행하도록 하라’하셨다.”

선조초 을사·정미년에 귀양갔던 관리들이 해배·복관되어 다시 정계에 등장함으로써 이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핵심세력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을사·정미·기유년 피죄인에 대한 신원·복작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명종대왕비 심씨를 의식한 선조의 고집스런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마침내 선조는 환관궁첩의 얘기를 듣고 반대한다는 의심을 신하들에게 받게 된다. 이에 분노한 선조는 ‘군약신강’하다는 불만을 정면으로 드러내며 완강히 거부한다. 그러나 수개월에 걸친 군신간의 지리한 논쟁은 선조의 패배로 끝나게 되고, 이로 인해 신하들에 대한 선조의 통제력은 점점 힘을 잃게 된다.
봉건왕조사회인 조선시대였지만, 임금이 마음대로 모든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언로를 봉쇄하지 않았던 바,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에서 수시로 왕의 잘못에 대해 상소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조는 매일 상소를 올리는 것에 대하여 못마땅해 하기도 하였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관계·재계·언론계·노동계 등의 인사들, 그리고 국민 모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서로 존중하고 합심해서 이 나라를 반듯하게 했으면 한다.
이제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모든 일을 자신들의 입장에서 흑백논리로 재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흑백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사회현상의 본질을 정확히 통찰할 때만이 얻어질 수 있는 중용의 지혜, 즉 시중(時中)이 필요한 시기이다. 제발 밥그릇 싸움 좀 그만하시기를…
<송재용>  (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