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한 정의의 탐색

1984년, 교토시립예술대학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그룹 ''''덤 타입''''에는 미술, 영상, 음악, 무용,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영역의 멤버들이 있다. 또 이들은 하이(high)와 로(low)의 구분이 없는 이들만의 예술을 표방하고 고급예술에 대한 냉소적인 표현으로서 ''''Dumb(벙어리)''''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그것은 ''''어리석고 바보같은 예술''''인 고급예술에 대한 항의, 반항 그리고 냉소라 할 수 있다.
''''기억''''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1999년에 처음 공연되었고, 올해 5월에 개최되었던 국제현대무용제(Modafe2003)를 통하여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올해의 국제현대무용제는 ''''하이퍼-쿨-불협화음의 세계(Hyper-Cool-Cacophony)'''' 라는 부제를 내걸고 무용을 넘어 여타 장르, 특히 비디오 아트와의 결합을 보여준 것이 특징이었다.
『Memorandum』의 내용은 우리들이 세계를 기억을 해 가는 시스템에 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은 우선 컴퓨터나 감각기관 혹은 인지시스템의 메커니즘을 상기시키는 설정으로서, 기억장치의 초기화상태라고 할 수 있는 무(無)의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이어서 오래 전의 기억이 나타나고, 다시 닥치는 대로 기억이 저장되는 한편 미래에 재생될 정보들이 현재에 저장된다. 그리고 희미하게 감추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자유롭고 환상적인 표현으로 증폭/재생된다. 그리고 어느 날 생생한 현실의 이미지가 그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었을 때, 그것은 의미와 신화가 고갈된 황야와 같은 모습이다. 이 작품은 구태의연한 과거에 대한 향수나 감정으로서의 기억이 아니라 기계적 정보처리프로세스라고도 할 수 있는 기억-재처리-재생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비연속적인 스토리와 엮어지는 무용, 사운드, 영상의 혼합을 통하여 (결국은) 인간의 뇌 속에서 풍화되고 모호해지는 기억의 불안정성과 방향성을 탐험한다. 즉 이 작품은 기억의 기능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덤 타입''''은 작품의 내용이전에 표현방식과 작가로서의 존재방식이 더 주목받고 있다. 온갖 영역의 팀원들로 구성되어, 스스로 기획하고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미래형''''예술을 선보이는 신선함 때문이다. 또 공연뿐 아니라 설치, 인쇄물, CD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그들의 활동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예술이 날로 21세기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어떻게 수용하고, 이 새로운 세기의 예술로 정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술, 음악, 디자인, 무용 그리고 문학이 망라되어 있는 단국대학교에서도 이와 같은 학제적(inter disciplinary: 學際的)인 그룹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http:// www.walkerart.org/calendar/0203/details/dumb.html에서 이 공연의 일부를 담은 비디오를 볼 수 있다.
<이원곤>  <예술대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