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포
<사회과학대학 법학부 법학전공>교수

1962년에 제정된 ‘이자제한법’은 일반서민의 보호와 생산자금의 원활한 공급을 위하여 연 40%의 한도 내에서 이자율을 정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은 1997년 우리에게 닥친 외환위기를 계기로 그 다음해 전면적으로 폐지되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연 40%로 제한되어 있는 ‘이자제한법’의 최고이자율을 폐지하면, 높은 금리를 기대하는 외국자본이 국내로 유입될 것이고, 그 결과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외환의 공급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자제한법’의 폐지로 외환위기가 극복된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고,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생산신용 뿐 아니라 소비신용의 영역에서 저금리시대인데도 이자가 원금을 훨씬 상회하는 연 300%의 사채이율과 연 1,500%의 기상천외한 이자율 약정이 등장하는 등 고금리의 폐해가 증가하여 서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불황이 계속되어 신용불량자 등 제도권금융 이용에 제약이 많은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사채 이용율이 높아지고 몇 십만원의 사채로 집이 경매에 넘겨지는가 하면 사채업자들의 협박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정신병에 걸리거나 야반도주, 심지어 자살에 까지 이르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사채업자들이 자국의 연 20% 미만의 엄격한 사채이율을 피하여 국내의 사채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대금업계는 일본계인 A&O그룹이 장악하고 있으며 자산규모가 15조 -16조원에 이르는 아코무 외에 일본 내 2위인 프로미스와 12위인 닛신(日新) 등이 국내에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이자제한법의 폐지로 이자를 수요와 공급에 의한 시장원리에 의하여 정하려는 이상적인 순수논리의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자제한법폐지로 인한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국회는 2002년 8월 사채업자를 금전 대부업자로 등록케 하여 양성화하고, 대부업자가 행하는 3천만원 이하의 소액대부에 대하여 이자율을 연 70%로 제한하고, 대부업자의 불법적 채권추심행위를 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부업등록및금융이용자보호에관한법률’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사채업자의 양성화와 등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성행하는 고리사채로 인한 서민금융생활의 폐해를 개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최대 연 70%까지 보장되는 이자는 사채자금을 양성화하기 위한 유인요소로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이율이다. 시장금리가 한자리수인 현 시점에서 연리 70%의 이율을 보장하는 것은 ''''고리채(高利債)의 합법화''''와 다르지 않다. 또한, 너무 많은 적용예외를 두어 입법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개인간 대부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개인간 거래로 위장한 대부업자의 행위에 대하여는 속수무책이다. 3천만원 미만의 대출에만 적용되므로, 소액대출을 기피하고 이율제한을 받지 않는 3천만원 이상의 대출만 성행하는 상황도 우려된다.
사채업자가 등록에 의하여 대부업자란 이름으로 양성화된다 하여도 그들의 수요층은 여전히 제도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려운 경제적 약자와 신용약자들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서 정상적인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시장 기능이라도 있다면 연 300%의 터무니없는 이자가 버젓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이는 수요와 공급의 자율조절에 의한 가격이 아닌 인간의 탐욕심이 빚어낸 폭리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사채의 양성화는 고리(高利) 일반에 대한 규제를 전제로 제시될 때야 비로소 설득력이 있다. 고리를 제한하게 되면 사채시장이 더욱 음성화되어 암시장을 형성하고 규제회피비용까지 전가된 고리사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미 사채시장에는 전통적인 형태와는 다른 기업형 대부업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다소간의 이율제한을 받더라도 시장금리보다 몇 배 높은 수준의 이자가 보장된다면 합법화의 경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수익을 따라 움직이는 돈놀이의 속성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주장은 지나친 기우로 보인다.
‘대부업등록및금융이용자보호에관한법률’은 대부업자의 등록과 관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법으로 초점을 맞추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1998년 정부의 ‘이자제한법’ 폐지는 당시의 비정상적인 고금리 상황만을 생각한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정책결정이었다. 당시의 사정이 그러했다면 오늘과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이를 부활시키는 것은 또한 당연한 조치가 아니겠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리채를 시장논리로써 방치하는 나라는 없다. 고리채를 규제하는 것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안성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