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부모치고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에는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부모도 있다. 특히 어린 자식을 학대하거나 나쁜 짓을 시키는 부모도 있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우리는 매스컴을 통해 상반된 유형의 부모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자식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 대구 개구리소년들의 부모,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중국 중경에서 홍콩까지 간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딸을 구타하여 숨지게 한 비정한 아버지, 어린자식들을 목졸라 죽인 잔인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보도를 통해 접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부모라지만 이처럼 너무나도 차이가 나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고 슬프게 할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우리를 화나게 하기도 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 자식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부모 입장에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자식보다도 자기 자식이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필자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올바르게 훈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심보감』에도 ‘자식을 사랑하면 매를 많이 들고, 자식을 미워하면 밥을 많이 먹여라’는 구절이 있지 않은가?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고 위한다면 자식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주기 보다는 때론 자식을 엄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바 자식을 참되고 바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애로움과 엄함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헌데 요즈음은 어떠한가? 부모들 가운데에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 붓다 그 도가 지나친 일부 극성 부모들을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부모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심지어 아들의 병역문제까지 부정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다가 병역비리로 구속되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부모도 있다. 그 가운데에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재벌 등,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자식에 대한 문제는 조선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희춘은 관리 가운데 청빈한 편이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남 못지않았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감사 홍서주의 아들 홍반이 찾아왔기에 내가 ‘말 한 필을 줄 테니 해성(서녀)을 속신시켜 달라’고 간청을 했더니, 홍반이 허락하여 매우 기쁘다.…새벽에 홍반이 해성을 방매(放賣)한 문서를 만들어 나에게 보내주니, 이는 십분 빛이 나게 구제해준 것이다. 골육의 기쁨을 이길 수 없어 쌀 한말과 생선, 말린 민어 두 마리를 노비 편에 홍군에게 보냈다.…전라우후 이원명이 와서 하직을 고하므로 나는 ‘서자녀들을 보살펴 달라’고 말했다.…저녁에 이구의 사위 이정이 해복(서녀)의 방매문건을 가지고 와서 주었다. 비상한 은혜를 어떻게 갚으 리요. 부채 하나로 우선 사례하고 내가 틈이 나면 찾아가서 사례할 작정이다.…신시에 윤흥경에게서 사출(斜出:관의 인증표)된 해복의 매매문자가 왔다. 기쁨을 금할 수 없다. 다시 단자의 공함(空緘)에 이름을 써서 양인(良人)이 되게해주는 공사(公事)를 입계할 참이다.…내년 봄에 경렴으로 하여금 음사(蔭仕)의 취재(取才)가 되게 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영릉참봉의 망(望)에 경렴이 첫 번째로 들었고, 강회경?홍일민이 두·세 번째로 들었는데 경렴이 낙점을 받았다. 가문의 경사가 이보다 클 수 없다. 이 애가 지난해부터 바라던 것인데, 이제 얻었으니 주상의 은혜가 지극히 중하거니와 판서 정대년과 참의 허엽이 도모해준 덕도 적지 않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희춘은 아들뿐만 아니라 서녀(원래는 첩이 노비이므로 얼녀임)들을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였다. 그는 아버지로서 하나뿐인 아들을 음직(蔭職)으로 벼슬길에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친구들에게 청탁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서녀들을 속신(贖身)시키고자 자신을 굽히고 간청하는 모습에서 그의 남다른 부정(父情)과 인간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청탁은 당시의 관리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었고 별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코 옳은 방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한 병역비리와 같은 차원으로 볼 수는 없다.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어쨌든 자식을 위해 애쓰는 유희춘을 통해 이 세상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희춘의 이 같은 청탁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미암 일기』에 숨김없이 기록한 유희춘의 마음과 자세를 이해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 비리를 저지르고도 안했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요즘의 일부 인사들과 비교할 때, 유희춘은 이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인물이라 하겠다.
자기 자식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이를 탓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자식을 올바른 사람으로 키우려고 한다면, 부모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그 방법을 모색하여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필자도 자식이 있는 부모의 한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내 자식들을 반듯하고 바르게 키워야할지 항상 고민이다. 부모들의 심정은 모두 이러한 것이 아닐까?
송재용  (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