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주어진 신체 기관 중 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특히, 사물을 볼 수 있게 하는 눈의 소중함이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이다.
몽골의 빌히트(4살)군 역시 가슴 한켠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며 살았다. 태어난 지 26월 째에 접어들면서 빌히트군의 왼쪽 눈에 비친 세상은 조금 남달랐다. 매일 보던 아빠, 엄마, 형의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만 보였던 것이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부모 역시 이런 아들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 몽골에 있는 연세 세브란스병원을 찾아갔다.
눈이 아프다고 보채는 아이를 업고 병원 문을 들어서면서도 그의 부모는 괜한 기우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 내려진 진단은 망막모세포종이라는 소아암의 일종이었다. 더군다나 그냥 두면 시력을 잃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 전체로 전이가 되어 자칫 생명까지 위험해 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날아든 비보 앞에 그의 부모 역시 눈앞이 칠흑처럼 캄캄해지고 말았다.
당시 병원 측에서는 보다 자세한 검사와 원활한 치료를 위해 한국 행을 권유했다. 빌히트 군의 부모는 슬픈 현실 앞에 마냥 안주하고만 있을 겨를이 없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오직 아들을 살리겠다는 굳은 신념하나로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가족 모두가 몸을 실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의 고된 병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처음 우리나라에 와서 찾아간 곳은 고대병원이었다. 그곳에서 빌히트 군은 약물치료를 받으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의 오랜 병원 생활에 유달리 참을성이 강했던 빌히트군도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가족들 또한 내색하지 않을 뿐, 이미 몸과 마음 모두가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치료 경과를 체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그들 가족 앞에는 더 큰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왼쪽 눈 일부에만 퍼져있던 종양이 전체로 퍼져 있었으며, 오른쪽에도 같은 종양이 두 군데나 발견된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마지막 방법 밖에 없었다. 눈 전체로 종양이 퍼진 왼쪽 눈은 제거를 하고, 오른쪽 눈은 방사선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그들 가족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수술비가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 놓인 아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가슴은 이미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이때 우연스레 이들 가족의 소식을 접한 김장환(극동방송 사장)목사가 우리 대학 장충식 이사장에게 다시 한번 이 소식을 전했다. 빌히트군의 아버지 역시 목사였기 때문에 몽골에서 교회활동으로 김 목사와 몇 번의 만남이 있었던 터였다. 장 이사장은 이들 가족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수술비를 포함한 가족의 모든 숙식경비 일체를 흔쾌히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빌히트군은 지난 8월 초 우리 대학병원으로 병상을 옮겼다. 또 같은 달 중순에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으며, 치료기간 동안 그의 가족은 우리 대학의 세심한 배려로 병원 복지관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번 수술의 총 책임자를 맡은 의대 장무환(안과·교수)기획조정실장은 “종양이 심한 왼쪽 눈은 수술을 통해 제거했으며, 그 자리에 의안을 넣었습니다. 또한 오른쪽 눈은 방사선 치료를 통해 현재 종양의 크기가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빌히트 군 가족은 수술이 일단 마무리가 돼 지난 2일 몽골로 돌아간 상태다. 하지만 오른쪽 눈의 완치까지 좀 더 경과를 두고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한달 후쯤 다시 우리 대학 병원을 찾아 방사선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이번 수술을 통해 한 어린아이가 다시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부디 빌히트 군이 단국이 열어준 밝은 세상 속에서 푸른 희망과 높은 꿈을 마음껏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정길 기자>  irisjg@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