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유 /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철학박사

■약력
- 필자는 문화이론가이며 미술평론가이다. 연세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문화이론과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고려대학교 교수를 거쳐 뉴욕대학교 초빙교수, 뉴욕 매체예술센터 관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정보이론과 현실’, ‘비디오예술론’,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 등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할 때 마시고 죽은 사약의 원료는 헴록(hemlock)이다. 미나리과에 속하는 이 독초는 마셔도 금방 죽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특히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할 경우 중추신경이 점점 마비되어 죽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게 된다. 말하자면 언어를 통하여 사고하고 언어로 진리를 가르쳐온 지식인을 처형하는데 가장 악랄하게 사용된 것이 헴록인 셈이다. 이렇게 정교한 기능을 가진 약초가 어떻게 일찍이 희랍시대에 개발되었는지 도무지 아연할 따름이다. 이 약초는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인간에게 가장 저주 당하는 식물이 되었다. 헴록이 죄인가, 그것을 사용한 인간이 유죄인가.
역사를 보면, 진리를 가르친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지식을 통하여 우매한 군중이나 대중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지식인들이 핍박을 받고 죽어갔다. 그리고 아까운 지식이 지식인들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작 죽어 소멸한 것은 지식을 핍박한 제도나 권력일 뿐 진정한 지식이나 진리가 죽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2천년 전 예수는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예수의 사상과 진리는 지난 2천년 동안 종교사의 찬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사상은 전 지구를 통하여 학습되고 체제화 되었으며 오히려 견고한 진리체계로 남아버렸다. 죽은 것은 예수가 아니라 오히려 관념적 지식이나 제도로 예수를 핍박한 유대교회였으며, 또 권력을 바탕으로 확장을 일삼던 로마제국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단순히 지구가 둥글고 지구가 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가 핍박을 받았다. 지금이야 초보적인 상식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서는 지구가 돈다는 사실이 엄청난 넌센스에다가 이단적인 주장이었다. 가톨릭교회는 그를 신을 모독한 죄로,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사실을 왜곡하였다는 이유로 가택 연금하였고 대재판(Inquisition)을 통하여 단죄하였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거나 자전, 공전한다는 사실이 명백한 진리로 확인되면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을 대변하는 종교가 어리석음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바티칸 교황청은 이 사실을 지난 1996년에야 공식적으로 사과하였다. 역사적 파문에 비하여 아주 짧고 간단한 내용의 사과문이었다.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관한 교회의 대재판은 잘못된 것이었다.”
아무리 신을 대변하는 기관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진실이 밝혀진 이상 사과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대목이었다. 그러므로 신을 믿고 섬기는 방법론조차 아집이나 비합리로는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진리는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러한 진리의 모습은 불교나 유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체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모든 종교들이 고난과 고행을 바탕으로 성립되고 각기의 구원관도 탈속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합리하거나 지나친 의식을 강조하다보면 결국에는 진리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진리를 표방하면 할수록 그 심판의 강도는 정론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영국의 과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history of time)에서 이 우주에는 무(無)란 없으며 오로지 ‘있음’(有)만이 존재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무에서는 유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며 유의 세계는 오직 유만이 있다는 가정이다. 그리고 질량불변의 법칙에 따라서 없어지는 것은 없으므로 있는 것은 오로지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였다. 만약 호킹의 ‘있음 철학’이 사실로 판명이 난다면 지금까지 가치체계를 좌우하던 상당한 논리들이 전복되거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가령 없어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죽음도 일종의 변화의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며, 환생의 논리도 오직 불교의 교리만이 아닌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톨릭 대재판에서 보여주었듯이 향후 종교의 문제에 까지 합리주의 사고나 과학적 실증주의가 대단위로 침투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만약 과학이 신의 존재를 실증적으로 찾아내거나 밝혀내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진정한 종교의 파국이 될 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와 헴록의 관계처럼, 오늘날 많은 문화현상에서도 문화를 죽이는 다양한 헴록과 같은 독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어느 인기가수의 리사이틀에는 4만여 명의 관중이 몰려들어도 책방들은 문을 닫는다고 비명이다. 영화관은 입추의 여지가 없어도 연극장이나 음악회에는 초대권을 가진 사람 이외에 진정한 관객을 만나기 어렵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는 더욱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디지털 과학기술이 생산하는 스펙터클 이미지의 노예가 되어 번들번들 윤기만 난다.
<이용우>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