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과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매개수단이 말(言語)이라면 이 말에 고저(高低)를 넣어 길게 부르는 것이 곧 노래이다. 그래서 노래(歌)를 영언(永言)이라고도 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음악과 정치」,「정치와 음악」은 전혀 관계가 없을 법한데 옛사람들은 “음악”과 “정치”를 동일한 대상으로 깊게 관련지어 생각해 온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그 나라의 음악을 들어보면 그 나라의 정치수준을 알 수 있다”(聞其樂知其政),“음악은 정치와 더불어 통한다”(樂與政通矣),“예의, 음악, 정치, 법률의 극점은 하나”(禮樂刑政 其極一也)라는 말 등이 양자(兩者)의 관계를 알게 하는 말들이다.
공자(孔子)가 어느 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 곳의 농부가 부르는 즐겁고 희망에 찬 노래를 듣고 그 나라의 정치가 순조롭게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으며, 다른 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 곳의 농부가 부르는 탄식조의 원망 섞인 노래를 듣고는 그 나라의 정치가 혼란스러워 민심이 흩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공자뿐 아니라, 누가 듣고 판단하더라도 두 나라의 정치상황은 짐작이 가능한 것이리라.
정치가 혼란스러워 어지럽게 펼쳐지는 세상을 일러 난국(難局)이요, 난세(亂世)라고 하니 난세를 짐작하게 하는 음악이 곧 난세지음(亂世之音)이다.
음(音)이란 세상만물에 느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니 만큼, 그 느낌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주위의 대상물(사람도 포함)로부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밝고 명랑한 소리로 반응하고, 슬픔을 느끼게 된 사람은 흐느끼는 소리가 될 것이며, 분노를 느낀 사람의 소리는 거칠고 사납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느낌은 예민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상대로 하여금 좋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언행을 삼가 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목소리를 낮추고 부드럽게 말해야 한다.

독일 사람들에게 왜 말을 만들었는가를 묻는다면, 그들은“시(詩)를 짓고 읊기 위해”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고 한다. 굳이 괴테나 실러, 하이네, 니체를 들먹이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 대답이다. 이태리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서슴없이“노래를 부르기 위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주름잡는 성악가들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을 만큼, 그들이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태리로 유학을 갔던 유명 테너가 선생을 만나러 오페라 극장까지 가는 동안 택시 기사가 부르는 노래에 정신을 빼앗겼고, 도착해서는 극장 청소부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는 경험담은 유명한 이야기로 남아있지 않은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물으면“사랑을 속삭이기 위해”라고 대답하고, 일본 사람들은“사귐(외교)을 위해” 중국인들은“장사를 위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운 일이지만,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인들은 마치“싸우기 위해 ”말을 만든 것 같다는 것이다. 이는 당치 않은 말이다. 우리의 멋진 시나 노래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부정은 하면서도, 왜 우리가 남들에게 그렇게 비쳐졌을까 하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TV 연속극에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이 목청을 세워 다투는 장면을 보고 그러는가?
접촉사고라도 나면 대로 위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욕설을 퍼붓는 장면 때문일까? 노사갈등의 현장에서 일방적인 주장만을 목이 터져라 외치기 때문일까? 아니면 개혁을 이유로 파격인사의 후유증이 몸살을 앓고 있는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핵 문제, 이라크 파병, 청년 실업(失業), 사(私)교육, 부동산, 시장경제, 민생치안 등의 산적한 문제들을 뒤로하고, 의사당 안에서 멱살을 잡고 힘 자랑하는 장면을 보고 그러는 것인가?
이제 우리가 말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다툼이 아니라, 상대와의 “친교(親交)를 위해”라고 대답을 하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 서로의 목소리는 더욱 낮추어야 한다.
모든 잘못이<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는 주장은 거칠고 사나울 수밖에 없는 난세지음이다. 거칠고 사나운 난세지음은 원망과 분노를 동반하는 소리여서 이 소리들이 멈추지 않고 우리사회를 진동시킨다면 그 다음은 망국지음(亡國之音)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