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생가외(後生可畏)라 하였다. 그들에게는 무한한 성장 가능성과 한없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먼저 살아온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귀담아 듣고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때로 열정과 이상만을 앞세워 일을 그르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얽히고설킨 현실의 제반 굴레를 지혜롭게 풀어 가는 여유를 갖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사회의 어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어른이 자신에게 지워진 사회적 책무를 저버리지 않는 것도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중요한 관건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조선 중기 광해군 때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의 우언은 이 점을 문제삼은 작품이다. 정국의 주도권이 나이 어리고 경험 부족한 이들에게 넘어간 혼란한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오랜 경륜과 지혜를 지닌 원로들이 수수방관하면서 입을 다물고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을 빗댄 우언인 것이다. ‘태촌집(泰村集)’ ‘효빈잡기(效嚬雜記)’ 하에 실려 있는 이 작품을 읽으며, 우리 젊은이들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존경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회의 어른들이 여기저기서 그 모습을 드러내주기를 기대한다.
옛날에 늙은 쥐가 한 마리 있었는데, 물건을 훔치는 데 귀신같은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두워지고 기력이 쇠잔해짐에 따라 혼자 힘으로는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쥐들이 그에게 가서 먹을 것을 훔치는 재주를 배우는 대신, 그 대가로 훔쳐온 것을 나누어주곤 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오래도록 하였는데, 마침내 어느 날 늙은 쥐의 재주를 다 배웠다고 생각한 쥐들은 다시는 늙은 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늙은 쥐 역시 원한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시골의 한 아낙이 솥에 불을 때어 밥을 지어 놓고 돌로 뚜껑을 눌러 놓은 채 이웃으로 마실을 갔다. 여러 쥐들은 밥을 훔쳐먹으려고 갖은 꾀를 다 부렸으나 마땅한 계책이 없었다. 그때 쥐 한 마리가 말했다.
“늙은 쥐에게 가서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다른 쥐들도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일제히 늙은 쥐를 찾아가 계책을 물었다. 늙은 쥐는 노기를 띠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내게 재주를 배워서 항상 배부르게 먹고 지냈다. 그랬는데도 지금 와서는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지 않으니, 나도 더 이상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
쥐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면서 사과하고는 간절히 청하였다.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앞으로 잘 모시겠으니, 바라옵건대 현명하신 어른께서 저희들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그러자 늙은 쥐가 이렇게 일러주었다.
“솥에는 발이 세 개가 있다. 그 중 발 하나가 놓인 곳을 힘을 모아 파내면 불과 몇 치 파지 않더라도 솥이 기울어져 뚜껑이 절로 떨어질 것이다.”
쥐들이 달려가 땅을 파자, 과연 늙은 쥐의 말대로 뚜껑이 열렸다. 이에 배불리 먹은 쥐들은 남은 것을 싸 가지고 돌아와 늙은 쥐에게 바쳤다.
아아, 짐승도 저렇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이신(李信)의 계책은 왕전(王?)에 미치지 못하였고, 무현(武賢)의 꾀는 충국(充國)만 같지 못하였다. 이는 노소(老少)의 차이이지, 한갓 용병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道) 또한 노성(老成)함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 진목공(秦穆公)이 이른바 ‘원로들에게 자문한다면 허물할 바가 없느니라’[詢玆黃髮則罔所愆]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라의 권병(權柄)은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어린애들에게 부쳐있고 나이든 원로들은 방관하고 있으면서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아, 비록 봉황의 울음을 가지고 있어도 도리어 팔짱을 끼고 있다는 꾸지람을 받으니, 살피건대 쥐들도 저와 같거늘 사람으로서 그만 못하니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