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중심국가”라는 화두가 우리에게 던져진 것이 올 해부터 인 듯 싶다. 작년 그 뜨거웠던 월드컵의 열기를 그대로 승화시켜 과거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아시아의 선도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구체적인 내용도 많이 알려져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 나라의 특성을 살려 동북아시아의 물류 중심지가 되겠다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유감스럽게도 올 상반기에 일어난 물류대란과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를 보면서 그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들었는데, 그러한 생각은 경쟁국인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상을 듣게되면 더 강해진다. 동북아 중심국가 계획의 또 다른 중요 내용은 금융허브에 관한 것이다. 원래 아시아의 금융센터는 동경인데, 10년을 넘는 불황에 흔들리는 동경을 대신해서 서울을 중심지로 키워 보겠다는 것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 나라의 처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적절한 계획이라고 생각된다. 금융이란 사람의 머리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전산과 제도 등 인프라가 갖추어 지고 정부가 앞장서서 육성하면 장미 빛 미래가 그려질 수도 있다. 더구나 IMF위기 당시 우리 나라를 컨설팅했던 멕킨지라는 회사가 올해 초 서울의 동북아 금융허브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했다는 사실도 매우 고무적이다. 그대로만 된다면 우리 나라는 명실공히 선진국이 되고, 우리 국민은 일등 국민이 될 것인가?
우리 나라와 같은 조그만 개방형 경제체제(small open economy)는 자신의 경제적 운명을 독자성을 가지고 헤쳐나가기 어렵다고 한다. 어쩔수 없이 대외교역을 통해 국부를 축적해야하는데 규모가 작다 보니 미국과 같은 큰 나라가 한번 기침을 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태풍이 불게되어 있다. 글로벌시대의 주역으로서 리더가 될 가능성은 당분간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자존심만 앞세워 무모하게 세계조류에 역류하면 결과는 자명하다. 그래서 이러한 나라의 처지를 비극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앉아서 우리의 처지를 한탄만 할 것인가? 나름대로의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그나마 외풍에 덜 흔들릴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르는 동북아 금융허브의 구상이 전혀 황당한 것만은 아니다. 요사이 간간이 보도되는 증권시장과 선물시장의 통합에 관한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 나라의 증권시장에 있는 모든 회사를 다 합쳐도 한 개의 거대 다국적 기업만 못하다는 것은 지난 번에 얘기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리의 증권시장이 외국인의 거래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느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또는 지금 그 주식을 사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분석할 필요도 없다. 그저 외국인이 사는 주식을 사고, 파는 주식을 따라서 팔면 된다. 우리 나라 국적인 회사에 대한 판단을 우리 스스로 할 수 없게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규모가 계속 이 정도에서 머무른다면 앞으로도 더욱 이러한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그리고 코스닥시장을 합쳐서 하나의 종합거래소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덩치를 키워서 외풍으로부터 받는 영향을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금융의 중심지가 되려면 우선 덩치가 커야 한다. 지금까지 아시아를 주도해 왔던 동경의 주식시장이 우리의 50배 정도임을 감안하면 시장을 통합한 후에도 한참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북아를 대표하는 주식시장이 되기 위한 다른 중요한 요인은 다양한 금융상품이 낮은 비용으로 거래되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의 주식시장은 거의 완벽한 전산화를 이루었고, 선물시장과 결합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거래비용의 절감을 기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증권거래소, 코스닥시장 및 선물거래소에 각각 주문을 내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주문을 내고 관리하는 것이 편하고 비용도 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을 통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경쟁국한테 밀릴 가능성이 있고,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가능한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정부가 마련한 통합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는데 남은 것은 국회에서 의결되는 것이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 나라의 자본시장의 앞 날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87 법학 졸>
최욱  choica@k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