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생전인 91년도에 펴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가 있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오로지 뚝심 하나로 국내 최대의 재벌그룹을 일군 정회장. 책을 낼 당시 이미 그는 76살의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그는 젊은이 못지 않은 뜨거운 눈빛과 패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 가난이란 장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공을 위한 밑천이었던 것이다.
우리대학 우영환(경상대학·경상학부·경제학전공)교수 역시 소아마비라는 육체적 장애를 딛고 당당히 대학 강단에 섰다.
이북에서 태어난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고 만 3살이 되던 해 1.4 후퇴를 맞았다. 살기 위해 무작정 어머니의 손을 잡고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미처 내려오지 못했다. 갓난아이한테는 긴 피난길이 무리였을까? 무사히 피난을 오고 나서 하루 아팠는데 그러고 나서 영영 걸을 수가 없게 됐다. 소아마비였던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이 소아마비라는 사실에 어머니는 하염 없이 눈가에서 눈물을 찍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짚고 다닐 목발도 마땅히 없었다. 그래서 목공소에다가 주문을 해서 만들어 썼다. 목발 밑에 대는 고무도 없어서 고무신을 잘라 덧대서 썼다. 허술한 목발을 짚고 다니다보니 자주 넘어지고, 손에 물집 잡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동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공놀이를 할 때 그는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린 마음이 어찌 아프지 않았겠는가? 그럴 때마다 우교수는 목발을 짚고 자주 가는 성당을 찾곤 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성화(聖畵) 그리는 프랑스인 앙드레 부통(Andre Bouton) 신부님을 만났고, 우교수는 신부님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 신부님 역시 우교수를 무릎에 앉혀 놓고 불어를 가르치며, 마치 친자식처럼 대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입학통지서가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따지고 또 따져서 간신히 초등학교는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중학교 입시제도에 체육 성적이 반영돼서 결국 중학교도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고등학교는 애초에 마음을 접었다. 대신 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심했다. 학원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가파른 학원 계단이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오로지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마치고 그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해서 유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불편한 몸으로 유학만큼은 무리라고 한사코 만류를 했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강했다. 마침 어릴적부터 아버지처럼 믿고 따른 앙드레 부통 신부님의 도움으로 73년부터 81년 4월까지 프랑스 유학을 할 수 있었다. 유학을 마치고 나서도 83년까지는 그곳에서 연구원으로 활동을 했었다. 그 뒤 83년부터는 우리대학 강단에 서기 시작했다.
벌써 20여 년째 강단에 서고 있는 우교수. 요즘도 그는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천안까지 출근을 한다. 목발만 있다면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번 학기에는 화, 수, 금 수업이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다보니 화요일 날 내려가서 금요일까지 수업을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옵니다. 저에게 육체적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다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들이 힘들 따름입니다.”
그는 강의를 할 때도 앉아서 하지 않는다. 몸이 불편해서 앉아서 할 만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완강히 거부한다. 목발을 짚고 몇 시간이고 강의를 한다.
“서서 강의를 하는 건 교수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다리가 불편하다보니 칠판에 판서를 많이 못해줘서 학생들에게 그저 미안합니다.”
오늘도 우교수는 목발을 짚고 강의를 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린다. 목발을 짚은 그의 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가 있다. 그에게 장애는 결코 장애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전의 계기였다.
<박정길 기자>  irisjg@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