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프레전스(telepresence: 遠隔現前)’는 생소하면서도 우리에게 리얼하고 일상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전화가 바로 이 현상을 가장 먼저 실현한 테크놀러지이기 때문이다. 전화의 상대방은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는 그곳에 있다. 즉 현실을 넘어 ‘그 곳’에 있는 세계와 연결하는 것이다. 화상전화를 사용한다면 훨씬 더 리얼한 경험이 가능하겠지만, 이전에 이 지면을 통해 한번 소개한 적이 있었던 R. 로자노 헴머(Rafael Lozano-Hemmer)(1967- )가 발표한 [추적](The Trace. 1995)은 독특한 방법으로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다른 장소에 있는 두 명의 참가자는 같은 텔레매틱(telematic: ‘telecom’과 ‘infomatics’의 합성어) 공간을 분담하며, 참가자들은 상대방에게 다음의 4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다.
1) 3D그래픽 - 현장의 천장에 붙은 거대한 스크린에 장치된 링과 디스크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작동한다. 링은 참가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디스크는 다른 장소에 있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2) 로봇 램프 -천장에는 참가자가 손에 들고 있는 센서를 통해 위치를 추적하는 조명이 있는데, 파란 것은 참가자의 위치를, 노란 것은 상대방의 위치를 가리킨다.
3) 위치상의 소리 - 10개의 스피커들은 각각의 참가자로부터 발생되는 소리를 감지하여 실시간으로 들려준다. 참가자는 입체적인 음향을 통해 상대방의 위치를 알 수 있다.
4) 통계상의 스크린 - 각 장소는 거대한 모니터에 의해 참가자들의 위치정보가 통계상의 메시지와 그래픽으로 디자인되어진다.
여기서 참가자는 상대방의 존재를 마치 유령처럼 감지하며, 자신이 서있는 현실공간과 이공간(異空間)을 오버랩 시키고, 이 낯설고 초월적인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텔레프레전스 현상이 잘 반영되어 있어서, 우리가 같은 순간에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으며, 또 신체를 벗어나는 것과 같은 ’이동(trans)‘이 실현되고 있다.
종교학자 M.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샤머니즘을 이공간에 존재하는 신(神)과의 만남, 즉 접신(接神)의 테크놀러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전의 사람들은 샤먼이나 영매술사에 의해 텔레프레젠스 현상을 감수(感受)하고 있었던 것이고, 말하자면 샤먼은 텔레프레젠스 현상의 선구자인 셈이다. 최근에 와서 이러한 원시적 신비체험현상이 관심을 끌고 있으며, ‘네오샤머니즘‘이라는 용어마저 등장하고 있으나, 그것을 단지 오컬트 취미나 과거회귀성향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영상정보환경과 디지털문화에서 텔레프레전스현상은 매우 리얼하고 일상적인 경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원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