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면도날과 도끼


면도날은 날카롭다. 그래서 수염을 깎을 뿐 아니라 때로는 살까지 상한다. 그러나 기둥이나 들보 등 큰 통나무를 깎으려면 도끼여야 한다. 세상에서 역사상 큰 일을 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반드시 머리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굳은 의지로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이다.
약 1,200개의 특허를 따낸 미국의 발명왕 토마스·에디슨의 어머니는 어느 날 아이가 다니는 소학교 선생으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다. 「아이가 머리가 너무 나빠서 따라가지 못하니 다음해쯤 다시 보내달라」는 사연이었다. 이러한 에디슨의 끈기는 누구도 못 당했다. 요즘은 전등이 거의 형광등이지만 전에는 우리가 모두 작열등을 썼다. 이 전등을 발명할 때 에디슨은 5만 번째 실험에서 마침내 성공했다. 그런 과정에서 친구들은 안 되는 일은 과감히 단념하고 다른 연구를 하라고 권했다. 5만 번째에 성공한 그는 「나는 이제 49,999가지 안 되는 일을 알고 있다」고 자랑을 했다. 그러니 그가 남긴 교훈은 「천재는 99%의 고한(苦汗)과 1%의 영감이다」라는 것이 있다.
오래 전 일이다. 일본 동경대학의 어느 범어 (인도 고전어) 전문 교수는 20년 연구 끝에 범어사전 원고를 끝냈다. 그래서 평생의 역작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왔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분실해버린 것이다. 신문·라디오 등을 통해서 광고를 하고 행여나 하여 근처의 쓰레기 버리는 곳을 샅샅이 뒤졌으나 원고는 온데 간데 없었다. 그 교수는 다시 마음을 비우고 또 20년의 정열을 쏟아서 마침내 40년 만에 지금도 남아있는 대작을 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력이 없다. 한사코 「빨리빨리」서두르니 우리나라를 다녀간 동남아 사람들은 이것이 한국인을 뜻하는 별명처럼 되어버렸다. 학자가 빨리 유명해지려고 남이 연구해놓은 것을 실례하면 망신을 당한다. 공직자가 빨리 승진하려고 동료를 중상·모략하다가 마침내 제 칼에 제 목을 다치고 만다. 사업가가 빨리 재벌이 되려고 세금포탈 등등으로 파산한다. 이러한 경우와는 너무도 대조적 예를 하나 들어본다. 영국의 물리학자 폴·디락은 193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노벨위원회에서 그 해의 수상자로 선발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한참 고민하다가 자기가 일하고 있는 연구소 소장을 찾아가서 노벨상을 거절하겠다고 상의를 했다. 그 소장은 거절하는 이유를 물었다. 디락은 노벨상 수상자가 되면 강연이나 하라고 여러 곳에 불려다니면 연구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그 소장은 「수상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는데 그 이유 역시 걸작이었다. 즉, 「노벨상을 거절하면 더 유명해져서 더 자주 불려다닐 게다」라고.
이왕 노벨상 이야기가 나왔으니 또 하나의 신기한 예가 있다. 1973년에 당시 베트남의 지도자 리덕토는 평화상을 미국의 키씬저와 나누어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깨끗이 거절했다. 아직도 조국은 통일이 안되었고 정글 속에서 많은 인민들이 미국의 총알에 목숨을 잃고 있는데 무슨 염치로 내가 평화상을 받겠느냐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인생에 있어서 자기의 일생계획을 세울 때 현재를 기준으로 하는 자는 망하기 일쑤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건강관리만 잘하면 90세까지도 활동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100세가 신기한 나이가 아닐게다. 그런데 20대에 자기가 희망하는 학교나 직장에 못 들어가면 앞으로 70년간 활동할 자기 인생에 파산선고를 해버린다. 이것 역시 「빨리빨리병」의 피해다.
다시 노벨상을 받은 몇몇 학자들의 예를 들어본다. 1995년에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루카스는 평소에 묵묵히 연구만 하고 있었다. 세속적인 명예나 돈에 대해서 한결같이 무관심하여 주변 사람들에게는 몹시 바보스럽게 보였고, 그러니 그의 아내 역시 학자의 아내로서 고독과 남편의 무관심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이혼을 했다. 그런데 이혼조건이 약간 별다르다. 「당신이 이제부터 7년 내에 혹시 노벨상을 받으면 그것은 이 아내의 고독 덕분이니 상금의 반절은 나에게 보내라」는 것이었다. 루카스는 무심코 동의했는데 7년 마감 2주전에 노벨상 통고를 받고 상금의 반절인 30만불을 고스란히 놓쳤다고.
200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러시아의 비탈리·긴스버그는 1950년대에 발표한 연구가 거의 50년 후에 인정을 받았다. 로버트·펠드만은 오랫동안 노벨상을 연구했는데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노벨 과학상을 받으려면 「Live to a very old age」 즉, 꾸준히 노력하되 오래오래 살라는 것이다. 그냥 폭삭 늙을 때까지 목숨만 부추기고 있으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서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라는 뜻일게다.
끝으로 소박한 비유 한 마디 하자면 「고스톱 판에서도 초저녁에 돈을 아무리 많이 따도 결국 최후의 승자는 새벽에 웃는 사림이다」.
박춘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