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⑩ 붕당이 나라를 병들게 하는구나

요즈음 정치판에서 정치인들끼리 패를 갈라 이합집산과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이들은 정치철학이나 명분·의리를 알면서 이런 짓들을 하는 것일까? 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한낱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뿐이다. 패거리 정치가 이번에는 없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옛날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실망했다. 더구나 새로운 패거리 세력들이 형성되어 정치판을 흐려놓고 있다.
패거리 정치하면 3김을 대표로 들 수 있다. 3김의 공과는 후일 역사가가 평가하겠지만, 패거리 정치의 장본인으로서 그 폐단의 원인 제공자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잔존세력들이 아직도 정치판에서 자성하지 않고 3김에 연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패거리 정치의 모습은 조선시대의 붕당과 다를 바 없다.
선조 때 군신간에 군약신강(君弱臣强)이란 말이 나돌았다. 결국 이때부터 왕권이 제약되고 신권이 강화되자 금기로 되어 있던 붕당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급기야 붕당사이에 당쟁이 치열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붕당의 사전적 정의는 이해나 주의 등이 같은 사람끼리 모인 단체, 또는 끼리끼리 모인 패를 말한다. 조선시대 붕당의 경우 학연·지연을 중시했고, 그리하여 당쟁에는 지역적 대립과 혈연·학연적 대립이 수반되었다. 붕당의 정쟁도구는 도덕적 수양여부와 명분·의리였다. 그러나 사림(士林)의 당쟁은 근본이 권력투쟁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당당한 명분과 의리가 아니라, 자기 당에 유리한 명분이나 의리를 견강부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권력투쟁이란 상대방을 일망타진해야만 끝이 난다. 이렇듯 당쟁이 권력만을 추구하게 되면서 정치는 혼란스러워지고 사회는 병들어 갔다. 당쟁의 폐단은 자칫하면 체제 자체가 공멸할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시도된 것이 영·정조의 탕평정치였다. 이는 왕의 힘으로 붕당의 뿌리를 뽑을 수 없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탕평정치의 결과로 외척세력이 성장했고, 그들이 무능한 국왕을 세우면서 외척들의 세도정치로 치닫게 되었다. 이로 인해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당쟁에 대해 무작정 다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일정한 원칙과 틀 안에서 권력투쟁을 했다고 평가하는 사학자들도 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이 더 많고 이 때문에 당쟁이 격화되었다는데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미암일기』에는 당시의 이러한 상황의 일면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어제 들으니 김효원 심의겸의 두 당이 서로 원수처럼 공격을 한다고 한다. 당초에 심의겸이 김효원을 나무라고, 김효원이 심의겸을 흉보아 각기 분당이 되고 서로를 모함하였다. 김효원과 심의겸은 비록 모두 외직으로 나갔지만, 심의겸 쪽이 김효원 쪽을 이겨 당하(堂下) 문사로써 유명한 사람이 많이 배격을 당하니, 이성중 같은 사람도 김효원과 친교가 있다하여 논핵을 당해 철산군수로 의망되기까지 하고, 정희적·노준도 그렇다 한다. 그러니 붕당이 나누어져 서로 공격함이 마치 당나라의 우·이(牛·李)의 당과 같다. 사림의 안정되지 않음이 이에 이르니 국가를 위하여 크게 우려가 된다.…전적 강서가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두 붕당이 대립하고 있으니 종당에는 반드시 하나가 무너지고 말 것인데, 중립으로 있는 사람은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습니까?’하므로, 내가 ‘마땅히 중정(中正)으로써 존심(存心)하여 편당이 없어야 하며, 감히 사감(私感)으로 사람을 해치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정색하여 공격하되, 그 간사한 서슬을 두려워하여 주저해서는 안된다. 만약 일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갑작스럽게 격동하여 분기를 내게 되면 유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큰 해가 돌아올 것이다’하니, 강군이 말하기를 ‘감히 마음에 새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다’하였다”
동·서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던 유희춘은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처신하여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특히 ‘중정(中正)’할 것을 강조하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해칠 경우에는 그가 어느 당에 속하건 두려워하지 말고 공격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공명정대한 입장에 서야 함을 역설하였다. 때문에 유희춘은 사사로운 이익에 매달리기보다는 원리원칙에 입각하여 대의(大義)를 우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강서가 와서 그 처신을 물을 정도로 동서 어느 쪽에도 들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울 만큼 붕당의 세력이 커져가고 있었다.
우리의 경우 대통령이 되면 자기 추종자들을 능력에 관계없이 기용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능력이 있어도 버리기 일쑤이다. 이러다 보니 정치나 국가경제가 잘 될리 만무하다. 이 모두 패거리 정치의 산물이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패거리 정치를 지양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주기 바란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