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읽기의 즐거움

⑩ 고양이와 쥐

지금이야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한때 우리 사회에는 ‘복지부동(伏地不動)’과 ‘무사안일(無事安逸)’을 삶의 지침으로 여기던 이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이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골몰하던 이들도 있었다. 참으로 편하게 살던 후안무치한 족속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또 주어진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하던 이도 있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 그 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호사자들의 비난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움직이면 소리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면 말이 되겠는가? 말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기 마련이다.
오늘 소개하는 우언은 최연(崔演, 1503~1549)의 「묘포서설(猫捕鼠說)」이다. 작자 최연은 신광한(申光漢, 1484~1555)으로부터 ‘자신을 대신하여 문형(文衡)을 맡을 자 최연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라고 할 정도로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으나, 중도에 병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간재집(艮齋集)』에 수록된 「묘포서설」은 그의 빼어난 문장력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제 할 일을 하지 않는 고양이와 그런 고양이에 길들여져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방자하게 날뛰는 쥐들, 마침내 이들을 일소하는 용맹스런 고양이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의 정치현실을 비판한 이 글을 대하노라면, 오늘의 우리 국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세든 집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쥐들이 살고 있었다. 그 쥐들은 항상 밝은 대낮에 떼지어 다니며 제멋대로 갖은 횡포를 부렸으니, 침상 위에서 수염을 쓰다듬는가 하면 혹은 문틈으로 머리를 내밀기도 하고, 담벼락을 뚫고 농짝에 구멍을 내어 집안에 온전한 구석이 없으며 옷을 담은 상자나 바구니를 마구 갉아 옷걸이에 성한 옷이 없었다. 심지어 부엌문을 밀치고 들어가 음식을 덮어둔 보자기를 들치고서는 사발을 딸그락거리고 항아리를 핥는가 하면 곡식을 먹어치우고 책상을 갉으며 시렁에 올려둔 귀한 책까지도 모조리 쏠아 망가뜨리는데, 얼마나 날쌔고 빠른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쥐구멍에 물을 붓자니 담벼락이 허물어질까 염려되고, 불을 지르자니 집이 탈까 염려되고, 돌맹이를 던지자니 그릇이 깨질까 염려되었고, 손으로 때려 잡아볼까 하였으나 구멍 속으로 숨어버렸다.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당(唐)의 두가균(杜可均)이 사용한 부적도 없고, 송(宋)의 소동파(蘇東坡)가 지녔던 신검(神劍)도 없으니, 내 물건이 손상되는 것만 염려될 뿐 아니라 내 몸이 물어 뜯기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걱정 끝에 나는 이웃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빌려와 으슥한 속에 놓아두고 쥐를 잡게 하였다. 그랬더니, 고양이는 쥐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전혀 잡으려 들지 않았고, 오히려 쥐들과 한 패가 되어 장난을 하였다. 그러자 쥐들은 쥐구멍 앞에 떼지어 모여서는 거침없이 횡포를 부리는 것이 더 심해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탄식하기를, ‘이 고양이는 사람의 손에서 편히 길러져 제 할 일을 게을리 하니, 나라의 법관이 부정한 짓을 한 자를 제재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장수가 적을 방어하는 일에 태만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하며, 한참동안 개탄하다가 실의에 빠져 이 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지 며칠 후 어떤 사람이 와서 하는 말이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는데 매우 사납고 날쌔어 쥐를 잘 잡는다.”하므로, 그 놈을 부탁하여 데려와 보니, 부릅뜬 눈동자는 금빛이 번쩍이고 무늬진 털빛은 표범의 가죽 바로 그것이었는데,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밤낮 집 주위를 맴돌며 살피고, 쥐구멍 가까이 가서는 조용히 코를 대보아 쥐냄새를 맡으면 꼼짝 않고 버티고 앉아서 허리를 웅크린 채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쥐수염이 구멍 입구에서 흔들거리는 것을 보자마자 쏜살같이 달려들어 머리를 깨부수고 창자를 끌어내며 눈알을 파내고 꼬리를 잡아 빼버리니, 열흘이 채 안되어 쥐떼가 잠잠해졌다. 윤승준(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윤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