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갗을 에는 차가운 바닷물도 부모, 자식, 남편 생각하면 따뜻하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한다는 해녀!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제주도에 가장 많다는 해녀! 그 해녀를 취재하기 위해 현장취재팀이 지난 1월 12일 부터 2박 3일간 제주도를 다녀왔다. 차귀도와 우도 서광리 해녀들을 만나 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 보았다.
<편집자주>

오후 5시쯤 제주공항에 내리자, 하늘빛이 어둑어둑 했다. 공항에는 돌개바람이 일순간 불어 머리칼이 심하게 흐트러졌다.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창 밖으로 내내 바다만 바라보았다. 날씨의 영향으로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인지 파도가 몹시 거칠었다. 이런 날씨라면 해녀 취재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내내 머리를 스쳤다. 늦은 밤까지도 들려오는 창 밖의 세찬 바람소리에 선잠조차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전날밤의 노파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괜한 기우였나 보다. 우선은 해녀를 찾아 해안 일주도로를 타고 한림에서 비양도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해안가에만 가면 해녀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해녀들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다시 차를 타고 차귀도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평생 넘게 해녀로 살아온 서정온(66)할머니와 만날 수 있었다.
“해녀, 제주도에서는 잠녀(潛女)라고도 합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는 바닷물 속에서 놀기 시작해서 열 살이 넘으면 자연스레 물질을 배우죠. 그때는 바다가 유일한 놀이터였던 셈이죠.”
하지만 서정온 할머니가 해녀로서 삶을 시작했던 이유는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6.25사변 이후, 거의 모든 집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물질을 하지 않으면 밥조차 먹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해녀를 평생 업으로 삼았던 거죠.”
그렇게 해서 시작된 해녀의 삶이 벌써 54년째다.
한편, 서정온 할머니 말에 의하면 제주 해녀들은 우리나라 해안가 지역뿐만 아니라 한때는 일본, 중국, 러시아까지도 진출한 바 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식구들의 생계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해 머나먼 타지에 가서 고생도 많이 했어요. 1년 중 명절 때에만 고향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그러나 해녀의 삶이 그렇게 쉽사리 끝나진 않았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어 제주도로 돌아왔지만 서정온 할머니는 여전히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매일 바다에 나갔다. 비단 서정온 할머니뿐만이 아니라 제주도 해녀라면 누구나 그러한 삶을 살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하나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해녀는 한 집안의 딸인 동시에 아내였고,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차가운 바다 속에서 힘든 물질을 하더라도 부모님 생각에, 남편 생각에, 자식 생각에 또 참고 참으며 살아왔다. 그게 바로 제주도 해녀의 삶이었다.
“해녀들은 생리 중이나 임신 중에도 물질을 했어요. 심지어 예전에는 분만 때가 되었는데도 물질을 계속하다가 그만 바다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이제와 돌이켜 보면 서정온 할머니에게는 그런 기억조차 결코 버릴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 했다.
한편, 해녀들은 여름철을 기준으로 볼 때 한 달에 평균 15일쯤 물질을 한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여름철 물에 들어가는 것의 절반 정도 들어간다.
“물질은 오전 10시쯤 입수해 5∼7시간 정도 바다에 머물다가 밀물 때에 집으로 돌아가요. 또 함께 입수하는 것은 해녀 공동체에 내려오는 전통인데 이때 테왁(몸이 물에 뜨도록 발포스티렌으로 만든 공)이나 망사리(테왁 밑에 달아놓는 것으로 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 주머니)를 물 위에 띄워 놓고 물 속으로 들어가죠.”
이렇게 해서 해녀들이 한번 물 속에 들어가면 짧게는 20여 초에서 보통은 2분까지 견딘다고 한다. 그러다 숨이 멎을 듯한 순간, 수면 위로 올라와 길게 숨을 쉬는데, 이때 “호오이 호오이∼”하는 높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내면서 호흡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쌓였던 탄산가스를 한꺼번에 내뱉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호흡 법이 바로 해녀들의 ‘숨비소리’다.
“보통 때 물 밖에서는 그 소리가 안 나요. 그런데 물질할 때는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내게 되요. 아마도 물질이 워낙 힘드니까 그런 특이한 소리가 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녀들의 독특한 호흡법인 ‘숨비소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해녀들의 힘겨운 삶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관광객들이야 아무렇지 않게, 무슨 암호 정도로 듣고 넘길 수 있겠지만, 해녀들에게는 오랜 해녀 생활을 대표하는 중요한 소리인 셈이다.
한편, 요즘 서정온 할머니에게는 새로운 고민 거리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제주에서 해녀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물질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요즘 젊은 여자들은 아예 물질조차 배우러 하지 않기 일수예요. 우리 마을에도 젊은 해녀들은 한 두 명밖에 없고, 대부분이 저처럼 환갑이 훨씬 넘긴 늙은 해녀들뿐이랍니다. 이러다 정말 해녀의 맥이 끊길까봐 그게 참 걱정이에요.”
요즘 제주도에서는 젊은 여자들이 열악한 조업환경과 국가의 많은 지원책이 없다는 점, 또 물질의 고단함, 해녀 생활에 따른 건강상의 문제 등을 빌미로 해녀라는 직업을 아예 등한시 한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안타까움에 서정온 할머니는 끝내 노래자락 한 구절을 불렀다. 물질하러 나갈 때 배에서는 부른다는 ‘이어도사나’라는 노래였다. 방안 가득히 노랫소리가 나직이 깔리면서 귓가를 맴돌았다. 왠지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노래가 끝이 나고 서정온 할머니와 헤어지면서 저 멀리 차귀도가 시야에 천천히 들어왔다. 아무리 물질이 힘들더라도 서정온 할머니는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테왁을 등에 메고 다시 바다로 물질을 나갈 것이다. 그리고 차귀도가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볼 것이고 말이다.
평생을 차가운 바다에서 물질만 하며 살아온 제주도 해녀들. 비록 그들의 삶은 고달팠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한 집안의 딸이고, 아내고, 어머니였다.
<방유미 기자> 0166500428@dankook.ac.kr
<방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