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곤의 美평新평 33

R. 로자노 헤머의 [공포의 재배치]
(re：positioning fear. 1999)


지난번에 소개된 바 있는 R. 로자노 헤머(Rafael Lozano-Hemmer)는 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면서,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한 공공장소의 대규모 설치 작업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그라쯔에서 제 3회 국제 필름+건축 비엔날레(Film + Architektur Biennale)가 열리는 동안, 350년 전 유럽의 가장 큰 군대의 군수물 창고였던 란데스조익하우스(Landeszeughaus)의 건축적/역사적 의미에 착안한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는 중세의 3가지 공포를 묘사한 대성당의 프레스코 벽화 ‘신의 재앙’인데, 당시의 사람들에게 공포로 느껴졌던 것, 즉 1477년의 유럽의 들판에 출현했던 메뚜기 떼, 흑사병(운 좋게도 그라쯔는 전염병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터키군의 침략에 대한 공포 등이다. 바로 과거의 공포를 그린 그림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현대와 연결시키고 변형한 설치 작품인 것이다. 즉 이 작품의 배경은 역사적 현장 또는 정치적 사회이기도 하며, 관객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 이 장소들은 관객들의 참여에 의해 색다른 공간으로 각각 해석 될 수 있으며, 관객들은 (결국 배우가 되어) 작품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품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로서 IRC(회의 프로그램)와 ‘원격부재’(tele-absence)를 들 수 있는데, IRC는 ‘현대의 공포’를 논의하는 인터넷 대화방이며, 전 세계의 이론가들과 평론가들로 구성되어, 그 회의내용을 실시간으로 건물 정면에서 볼 수 있다.
건물의 전면에는 그 면적을 가득 채우는 대화와 소스 코드로 채워진다. 그것은 현대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신드롬, 나아가서는 에이즈, 테러, 경제의 불균형과 파괴, 불신사회, 유전자의 변형, 피난과 도피 등이다. 그 내용은 추상적, 지리적, 건축학적, 철학적, 생물학적인 것들로서, 서로 편집되기도 하고 인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요소 ‘원격부재’는 회의내용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한데, 관객들은 자신의 그림자가 비춰지는 부분의 내용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건물을 ‘읽기’ 위해서, 관객들은 감지기를 착용해야 한다. 그 감지기는 사람들이 걸을 때 빔 프로젝터의 광선을 이용하여 그림자를 만든다. 이를테면 이 ‘거대한 그림자’는 건물의 엑스레이 사진인 셈이다.
란데스조익하우스는 터키사람들에 대한 공포심에서 건축되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라쯔를 침범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에게 그 공포스러운 존재는 아련한 그림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마치 관람객의 거대한 그림자와 같이. ....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 등장한 ‘군수물 창고’는 그 공포가 전이된 결과이다. 이 작품은 결국 주변환경 즉 건축물과 미디어와의 실험적 결합을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 또한 자신의 작업은 ‘건축과 공연 예술 사이에 위치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 교수
이원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