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24 -정신의 힘 삶의 가치

금난새 / 유라시안 필하모닉 음악감독·경희대 교수



내면을 함께 가꾸는 젊은이 되자

지난달 파리 드골공항에서 였다. 파리에서의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기 위해 탑승을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마침 베낭여행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한 무리의 한국 젊은이들과 가까이 앉게 되었다. 얼굴엔 긴 여정으로 인한 가벼운 피로도 서려있었지만, 밝은 표정과 유쾌한 대화 속에서 풍기는 활력이 젊은 여행자들의 기분 좋은 설레임을 전해주는 듯 했다.
일행들 중 몇 명은 체육을 전공하거나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었던지 손에 럭비공을 들고 있었는데, 그 중 두 명이 탑승시간을 기다리기 무료했던지 슬며시 일어나 공을 던지고 받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한두번 그러다 말겠지 했었는데, 슬슬 재미가 나던지 조금 후엔 마치 운동장에서처럼 본격적으로 던지고 받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비행장의 탑승대기실이 느닷없이 럭비 선수들의 체육관으로 바뀌어버린 셈이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눈살을 찌푸렸고, 나 또한 갑작스레 펼쳐진 뜻밖의 모습을 보며 젊은이들에 대한 첫인상이 많이 구겨짐을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젊은이들, 개성적이고 자신감 넘친 언행과 관심분야에 관한 해박한 지식으로 사람 놀래키기도 잘 하지만, 이처럼 상상을 불허하는 어이없는 행동으로 기성세대를 기막히게 하는 것도 또한 재주인 모양인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놀이는 계속될 뿐이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의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갈등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을 모른 채 할 것인가, 아니면 어른답게 나서서 점잖은 말로 나무라야 할 것인가. 다행이랄까, 마음을 채 정하기도 전에 보딩사인이 켜졌고 우리는 같은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이번엔 인천공항.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기 위해 대기하는 중이었다. 드골공항에서 만났던 젊은이들이 이번에도 내 주변에 모여있었다.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는 기쁨과 안도에서였는지 그들은 더욱 활기차고 유쾌해 보였다. 짐이 나오기까지의 짧은 기다림은 이번에도 이들의 피 끓는 청춘을 잠재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건장한 젊은이들이 다시 공놀이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드골공항에서의 고민을 다시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 맘 속에 어떤 염려와 아쉬움이 조금씩 고여옴을 느낄 수 있었다. 청바지에 베낭을 멘 자유롭고 분방한 겉차림의 뒷편으로 마음속에 문화를 담고 교양을 가꾸는 그런 여행을 꾸려갈 순 없는 것일까. 물론 그들이 보여준 단편적인 행동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판단해서도 안되겠지만…
바로 그때 어떤 초로의 신사 한분이 공항의 근무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근무자를 향해 점잖은 말투로 젊은이들의 볼썽 사나운 행동을 자제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근무자의 요청과 제지가 있자 젊은이들은 멋적은 표정으로 어울리지 않는 놀이를 그만두었고 대기실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다시 생각하니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간 것 같다. 요즘 유행어처럼 되어버린 세대차에 관해서, 젊음의 특권으로서의 열정과 학생이 지녀야 할 규범으로서의 절제에 관해서, 혹은 어른노릇을 제대로 한다는 말의 참뜻은 무엇일까 하는 자문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한편으로 주변 사람들의 불편을 아랑곳하지 않고, 또 공공시설의 훼손에 대해 무신경하게 그때의 심심풀이와 재미만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철없는 모습과 다른 한편으로 필요한 시기에 나서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던 어른으로서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며 만들어낸 어떤 안타까움이 아니었을까.
마침 한 신사가 근무자를 부르는 부드러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고, 그런 모습에서 적절한 때에 필요한 역할을 지혜롭게 실천하는 어른의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청춘의 뜨거운 피를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 뜨거운 가슴 속에 교양의 샘을 파고 문화의 나무를 심어 내면을 함께 가꾸어 가는 젊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은 꼭 전하고 싶다.
금난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