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을 감싸주는 재래시장 - 안양 중앙시장·남부시장

인심이 있고, 덤이 있고, 에누리가 있고, 향수가 남아있는 곳
오랜 단골네를 찾아 가면 가족보다 더한 정이 있다


꼬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마냥 들뜬 아이의 미소가 참 해맑다. 동무들이 놀자고 부르는 소리도, 다른 때였으면 한달음에 달려갔겠지만 지금은 ‘귀에 차지’도 않는다. 아이의 발걸음은 물수제비마냥 가볍기 만하다. 이미 마음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어린시절 어머니를 따라 찾았던 장은 항시 신기하기만 했다. 희한하게 생긴 생선이며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래저래 구경을 하다보면 어느새 어머니는 저만치 가서 내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를 놓칠세라 숨을 헐떡이며 달려갔다. 그리고 깊이 호흡한다. 익숙한 공기다. 시장 특유의 냄새, 그것은 약간은 비린 흙내음과 비슷하다. 아니 바다향의 그 무엇과도 비슷하고 어쩌면 사람의 움직임과도 닮아있다. 그래서 어린 나에게 시장은 참 향기로운 곳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따라 잔걸음을 걷다보면 어느새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러면 나는 적당히 칭얼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투정을 부리고 나면 어느새 내 손에는 막대사탕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얻은 보물을 나는 집에 오는 내내 조금씩 핥아먹었다. 혀에서 그 맛이 잊혀질 때쯤 한번씩 먹으며 이미 나는 어머니로부터 한참을 뒤쳐져 걸어간다.
사탕을 다 먹을 때쯤이면, 이미 해는 뉘엿뉘엿 모습을 감추려했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골목길에서 어머니의 어깨가 왜 그리도 지쳐보였는지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이 참 보기 싫었다. 나는 달려가 어머니 손에서 봉다리를 잡아 댕겼다……. 그렇게 어머니와 나는 집으로 왔다.
20여년이 지났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잊혀지는 기억을 잡고 싶은 마음 하나로 오늘 다시 장을 찾았다.
이른 새벽의 시장은 하루 장사의 준비로 분주하기만 하다. 하나둘씩 점포마다 불을 밝히면, 새벽이슬과 차가운 공기만이 맴돌던 골목에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진다.
가게마다 오늘 팔 물건을 이리저리 가져다 놓고, 이렇게도 놔 보고 저렇게도 놔 보고 손님맞이 준비에 한참이다. 부지런히 준비해야 얼른 개시를 할 텐데 오늘따라 손이 더딘 것 같다. 물건 정돈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생선가게 내외는 아침부터 티격태격 이다. 맞은편 과일가게 아저씨는 부지런히 점포 앞을 쓸고 있다. 야채가게 할머니는 어느새 도라지를 한 바구니나 다듬고 있다. 이제 정리가 다 되었나 보다. 손님만 찾아 주면된다.
이맘때쯤이면 골목을 누비는 반가운 사람이 있다. 바로 이른 아침 시장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파는 아주머니이다. 이 아주머니의 발걸음에는 알림이 없다. 소리도 없다. 하지만 장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언제쯤이면 이 앞을 지나가겠거니, 그러면 커피한잔 마시며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물건을 팔다 짬을 내 끼니를 해결한다. 물건을 팔다 먹는 밥은 왜 그리도 꿀맛인지. 장사는 안 되어도 어차피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니까 끼니는 꼭 챙긴다는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멍청한 강아지는 신이 나서 골목을 헤집고 다닌다.
이제 벌써 오후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무슨 반찬을 할지 고민하는 주부들도 이곳을 찾는다.
그럴 때면 즐거운 실랑이가 시작된다. 100원, 200원도 여기, 이곳에선 몇 십분의 값어치를 갖는다. 우리가족, 내 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입히기 위해서라면 몇 시간의 발품도 아깝지 않다. 또 단골집에 가면 덤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의 매력일 것이다.
“애들은 어쩌고 혼자 나왔어?”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정겨움이 있기에 장에 나오는 것이 즐겁다.
이렇게 장을 보다 보면 어느덧 두서너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러면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온다. 발이 아프다. 손에 들려진 장바구니가 무겁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다.
손님들이 하나 둘 돌아간 장에서는 하루 장사를 마친 시장 상인들이 피곤함을 잊고 매상을 살핀다.

힘들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쉼도 없이 일했다. 그래도 벌이는 예전만큼 신통치가 않다. 길 건너에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부터 장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띠게 줄었다. 누구를 탓하겠냐마는, 그래도 속상한 마음은 억누를 길이 없다.
이제 이것도 그만두어야 하나? 잠시 허튼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그래도 여기서 벌어서 내 가족들이 살았고 자식들이 배웠다. 몇 십 년을 이곳에서 터를 잡고 지냈는데 어떻게 이곳을 떠나겠는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저 달을 보며 집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나서 다시금 집을 나섰다. 내일을 위해서, 부지런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좋은 물건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동이 트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내일을 준비한다.
재래시장에는 정형화된 그 무엇은 없다. 깔끔하게 포장되어 조명을 받으며 진열된 상품도 없다. 그러한 겉포장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지 않는다. 여기는 신뢰가 바탕이고 정직이 최선이다.
몇 십 년 단골이 있기에 오늘도 재래시장의 새벽이 시작되고 상인들은 다시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장사를 개시한다.
그곳에는 덤으로 얻어지는 정이 있고, 사람 사는 향이 느껴진다.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그곳을 기억하며 다시금 찾게 된다.
<이지희 기자>
edelwiess317@dankook.ac.kr
<이지희 기자>  edelwiess317@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