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구치 요이치로(河口洋一朗)
<GROWTH: Mysterious Galaxy> 1983.

얼마 전 한국의 과학자에 의한 생명공학분야의 쾌거가 있었지만, ‘배아복제’니 ‘줄기세포’니 하는 용어가 생명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논란을 일으키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 수정된 세포는 분열, 즉 같은 모양이 반복되는 ‘동형반복‘을 거듭하면서 하나의 완성된 신체로 성장해간다. 그러면 우리의 신체도 일종의 프랙털 구조인가?
주로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듯 하지만, 수지침(手指針)이라는 말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손(手)이 신체전체와 대응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손바닥 한가운데는 배 혹은 위장이고, 중지의 끝은 두개골 부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손에 침을 놓으면 대응되는 곳의 (신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신체의 부분과 전체가 자기상사(自己相似: self-similarity)의 관계에 있음은 물론,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있지 않다면 성립되지 않는 ‘과학(?)’인 것이다.
다시 미술이야기로 돌아간다. 이 영상은 카와구치 요이치로가 1983년에 제작한 동화상의 한 컷이다. 마치 새싹이 자라 나무가 되듯이, 이 형태는 하나의 알고리즘에 의해 성장해 간다. 그것은 생명체가 성장하는 모습이다. 미술에서 오랜 세월동안의 주제였던 ‘생명’과 ‘생명성‘, 그리고 ’역동성‘이 수식(數式)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90년대 중반에 가와구치씨에 대한 기사를 국내의 미술잡지에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가와구치씨는 한 작품의 완성을 위하여 컴퓨터의 리턴 키를 치고 나서 며칠 혹은 일주일씩이나 문을 잠궈 놓았다. 컴퓨터가 그것을 계산하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차 한잔 마실 시간에 끝나버린다. 이 작품만 해도 지난 호(35회)에서 보았던 와이어 프레임에서 불과 8년만의 일이듯이, 컴퓨터의 기능향상속도는 참으로 빠르다.
그리고 수학과 미술에서 나온 두 가지 결과가 거의 유사하다는 사실은, 이미지네이션을 도구로 하는 예술과, 논리적 검증에 바탕을 둔 과학이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매개로 하여 새로운 형태로 만날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이 분야는 생명체의 형태형성학(Morphogenesis)이나 발생유전학(Developmental Genetics)에 관한 연구분야와의 교류를 통하여, 최소한 생명체의 표현만큼은 - 그것이 DNA에 기록된 정보에 의해 RNA를 통합해 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한 - 수치에 의해 기록되고 재생되거나 가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확립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의 인공생명연구는 과학, 철학, 종교, 예술 등 모든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로써 영상예술은 사이버공간을 무대로 새로운 전개를 보이고 있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 교수
이원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