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선비이야기 - 미암일기(眉巖日記)를 중심으로
⑮ 간언(諫言)에 귀를 기울이소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친구나 선후배, 직장의 동료 또는 상사에게 충고나 간언(諫言)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충고·간언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사심없이 말하고 들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것은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오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충고·간언을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충고·간언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특히 윗사람에게 간언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보면, ‘충신(忠臣)이 임금에게 간(諫)하는 방법에는 휼간(譎諫)·당간(戇諫)·항간(降諫)·직간(直諫)·풍간(諷諫) 5가지가 있는데, 공자는 그 중에서 풍간을 따르겠다’고 하였다. 풍간에 대해 명(明)나라 때의 학자 하맹춘(何孟春)은 ‘사물에 가탁하여 풍자하여 말하는 이는 죄가 없게 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족히 경계(警戒)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풍간이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사람마다 각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풍자하여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직언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말하는 사람은 좋은 뜻으로 말하는 것인 바, 듣는 사람 특히 윗사람은 이 모두를 수용해야만 한다.
‘사랑이 절박하면 그 말도 가혹하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왕에게 다른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충신연주지정(忠臣戀主之情)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왕에게 간하겠는가? 중국 위(魏)나라 태무제(太武帝) 때 직간을 서슴지 않았던 상서령 고필(古弼), 조선조 성종(成宗) 때 부정축재한 당시의 세도가 한명회(韓明澮)를 탄핵하여 물러나게한 대사헌 홍흥(洪興) 등은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미암일기」에 보면, 유희춘이 완사풍간(婉辭諷諫)의 정신으로 선조(宣祖)의 계옥(啓沃)과 보도(輔導)에 힘썼던 내용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신담(申湛)은 ‘옛사람의 말에, 임금이 어려운 때를 당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는 사람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면전에서 들이대며 과감하게 간하는 사람 가운데서 구하라 했습니다’하였다. 내가 말씀드리기를 ‘면전에서 들이대며 과감하게 간하는 선비라야 마침내 제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오니 만약 무조건 맹종만 하는 신하라면 비록 천백이 있을지라도 쓸데가 없습니다’하였다.”

“내가 강의를 끝내고 나아가 아뢰었다. ‘신은 이 무의(無意:뜻함이 없음)·무필(無必:기필함이 없음)·무고(無固:고집부림이 없음)·무아(無我:아집이 없음)의 설에 대하여 그윽이 감발(感發)됨이 있사옵니다. 무릇 임금이 말을 하고 일을 할 때에는 꼭 그래야 한다거나 꼭 그래서는 안된다거나 해서는 안되며 오직 의(義)에 따라야 할 뿐이옵니다. 그런 데 지난번에 대간(臺諫)이 주태문(周泰文)의 죄를 계청(啓請)하자 최 후의 비답이, 무의·무필·무고·무아를 망각한 병통이 없지 아니하여 평소의 중정(中正)·화평(和平)의 기상과는 같지 않으셨는데, 이것은 지극 히 온당치 못한 일이옵니다. 진실로 이런 일들에서 잘 성찰하시어 그 병통을 고치신다면 마음이 항상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고 고요하게 되실 것입니다’하였다. 주상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말이 매우 옳다. 다만 지난번 주태문의 일은 그 실수가 유독 아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도 역시 있었던 때문이므로 비답하는 사이에 부지중 잘못나간 것인데 오늘 논한 바가 이치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하시고 거듭 칭찬하였다. 내가 곧 일어나 절하고 감사를 드리며 아뢰기를, ‘진실로 이 이치를 아신다면 덕이 날로 새로워지실 것입니다’하였다. 입시했던 신하들도 모두 탄복하였다. 성상(聖上)께서 자기 허물을 말해 주는 것을 반기시고 선에 따르기를 좋아하시니, 비록 대우(大禹)의 도리에 합당한 말을 전하고 받아들인 것과 성탕(成湯)의 남의 말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라도 이를 넘지는 못한다 하겠다. 입시했던 승지 김계(金啓)가 물러나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유모(柳某)가 부드럽고 순한 말로 풍간하여 임금이 알아듣기 쉽도록 선으로 인도한다’하였지만, 그러나 이것은 바로 성상께서 실수를 자각하시어 곧 정상으로 회복한 것이요, 나는 특히 그 하교를 들었을 뿐이다. 무슨 보태드림이 있었겠는가”

존경받는 정치가는 비판 수용에 관대했다는 점에서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았다. 특히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치가·관리·기업가는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위정자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간언! 뜻은 좋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인가?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
송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