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상징성으로 파괴와 살육의 도시가 되었다
휴전 직후 서울엔 2층 이상의 건물이 한 채도 남아있지 않았다

비행기는 24시간 폭격이다
연기 뭉텅이 속으로 빨간 불길이
처참히 솟아 올랐다



해방과 동시에 작동하기 시작한 분단모순. 좌우 이데올로기의 극한적 대결은 결국 1950년 6.25 동란을 불러왔다. 6.25동란은 민족사 초유의 비극이었다. 전쟁을 겪는 동안 이 땅의 문인들은 문학의 시공간과 현실의 시공간이 교차하는 실존적 상황을 직접 체험하였다. 인간의 울음소리가 가을밤 여치의 울음소리보다 연약한 울림으로 들려올 때 문학은 존재의미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 속에서 반성적 사유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총아!/너는 네 몸이 불덩어리로 녹을 때까지/원수들의 피를 마셔라/검아!/너는 네 몸이 은가루로 부서질 때까지/원수들의 살을 삼켜라/오! 내 가슴에도 원수의 총알이 쏟아져 오면/내 사랑하는 조국의 제단에/몸소 방울방울 깨끗이 드리오리니”(장호강 <총검부> 부분)

격정적이고 직설적인 장호강의 토로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시적 진실성! “저 고운 별나라보다도/피아의 유탄이 밤에 베푸는/전장의 향연이 더욱 아름답다”라는 장호강의 노래를 역설로 읽을 수 없는 것도 한국전쟁이라는 배경 때문이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은 나와 조국을 하나로 만들었고, 조국을 침략한 원수를 물리치기 위해서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릴 각오를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이자 한 동포가 원수이자 적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국전쟁은 이렇게 참혹한 전쟁이었다.
이러한 전쟁 속에서 남과 북 모두에게, 서울은 승리를 담보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죽음이 흘러넘치는 전쟁터였다.

“수풀로 나부끼는/서울거리는/나의 고향/잔등의 채찍을 맞으며/사랑한 우리들의 수도다.// 악독한 원수들이 비록/아름다운 산하를 더럽혀/그림 같던 낙산 마루 위에는/나무 하나이 없고···<중략>···여기는 슬기로운 조상들이/죽음으로 외적을 물리쳐/자랑스런 도시/용감한 우리 선지자와 전우들이/조국의 자유를 위하여/피 흘려 싸운 영광의 거리” (임화 <서울> 부분)

인민군 탱크를 타고 서울로 입성한 시인 임화. 도망치듯 월북한 지 2년여 만에 돌아온 고향, 서울이었다. 임화는 원수들이 점령했던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는 감격을 위와 같이 토로하고 있다. 임화에게 서울은 고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서울은 <네거리의 순이>가 방황하던 현실의 공간이자 <네거리의 순이>가 행복을 찾아야 하는 시적 공간이었다. 서울은 그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임화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감격과 대비하여 서울을 빼앗긴 대한민국 시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렇듯 서울은 남과 북 모두에게 자랑스런 도시이자 영광의 거리였다. 민족사적인 상징성 때문에 한국전쟁 동안 서울은 파괴와 살육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적이 콩 볶는 듯한/방정맞은 다발총소리/금속성 음향을랑 남기고/뽀뿌라 가로수에 낙렬하는/칠십오밀리의 순발탄//백오고지를 점령한/우군이 적 소굴을 소탕하는/화염방사기의 줄기찬 광채/그리고 불똥이 만무하여/훤히 비치는 서대문지구의/거리거리와 큰 집 작은 집들···<중략>···때리고. 또 때리고/또 다시 때리는 데만 몸을 바쳐셔/무념무상으로 총을 쏘다가/총 끝에 칼을 꽂고 백병전으로!” (이영순 <연희고지·4> 부분)

서울을 수복한다는 의미는 전쟁의 승리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연희고지 탈환을 위한 치열한 시가전을 형상화하고 있는 이영순의 시를 통하여 파괴되고 있는 서울을 읽을 수 있다. 피난하지 못하고 서울에 머물고 있었던 역사학자 김성칠은 당시 서울에서 벌어진 전투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어제부터인가 시가전이 치열한 듯 싶다. 이제는 포성뿐만 아니고 불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대문에서 을지로 어름이 아닐까 싶은 곳에 검은 연기가 짚둥처럼 하늘 높이 길길이 오른다. 밤에는 그 연기 뭉텅이 속으로 빨간 불길이 올라서 처참하다. 비행기는 24시간 폭격이다. 얼마나 많은지 그 수효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갈아 떠서 목적물을 하나 하나씩 부숴나가는 모양이다. 정릉리 골짜기에도 새빨간 로켓포탄을 거듭거듭 쏟아 부었다.”(김성칠, <역사 앞에서>, 창작과 비평사)

일기에서도 살필 수 있듯이 당시 서울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참혹한 것이었다. 파괴와 살육의 도시. 서울을 휩쓸고 간 전쟁의 참화가 얼마나 가혹했는지는 휴전 직후 2층 이상의 건물이 서울 시내에 한 채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국 전쟁 동안에 서울은 철저하게 유린되고 파괴되었다.
당시 문학 텍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쟁 속의 서울은 생활의 터전이 아니라 생존의 극한공간이었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아군과 적군만 있을 뿐. 인간은 사라져 버린다. 전쟁 중에 서울시민들 또한 파괴된 거리만큼 피폐해지게 된다. “현기증 나는 활주로의/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돌진의 방향은 잊어버리고/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나비와 광장> 중에서)라는 김규동의 시에서처럼 방향상실과 참혹한 상처를 부여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장두식<대중문화연구소 연구원>
장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