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의 가슴에도 관객의 가슴에도 사랑이 고동쳤다


며칠 전 인터넷을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눈이 멈춰지는 기사가 들어왔다.
극단 유(대표 유인촌)의 대표작이기도 한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세종문화회관 퍼포먼스 홀에서 다시 공연된다는 기사였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재작년 겨울 대학로에서 이 연극을 보고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감동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올랐다.
유난히 추운 날이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그 어떤 날보다 따뜻한 겨울이었다. 내 마음 속 모든 감성에 환한 빛을 비춰준 정말이지 고마운 작품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고맙다고 표현 할만 한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한다. 단순히 작품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로서 지금까지 아니 아주 오랫동안 내 기억이 아닌 가슴에 남을 작품이다.
아동극이라 함부로 말하기엔 어른들에게 안겨주는 메시지가 너무도 크다. 우리가 커가면서 어느 순간 하찮게 여기고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이 이 연극을 통해 되살아난다. 희생이라는 말, 사랑이라는 말, 어찌 보면 우리 어른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는 점점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이 연극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진정한 의미들을 마음속에 새기게 된다.
화려한 무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런 유명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홍보를 하지도 않은 거 같은데 사람들의 입과 입을 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연극이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림 형제의 유명 동화인〈백설공주〉원작에 국내 만화작가 서광현이 다시 쓰고 박승걸이 연출했다. 이 공연은 보조적인 역할을 하던 난쟁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중 말은 못하지만 춤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난쟁이 반달이가 백설공주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는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연극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소극장이다. 관객석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관객 가까이에 설치된 무대는 연기자와 관객의 친밀한 호흡을 주도한다. 연기자의 행동과 대사, 눈빛들을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음으로 관객이 얻는 효과는 더욱 크다고 본다.

세트는 화사하고 아기자기하다.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볼거리들을 제공했다. 소품들의 바닥에는 바퀴를 달아 연기자들의 움직임과 함께 소품들이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공간 활용이 돋보였다. 또한, 한 가지 소품을 갖고 여러 가지 역할을 하게 하는 꼼꼼한 준비성이 역력히 드러났다.
연기자들의 의상도 마찬가지이다. 세트와 잘 조화를 이뤄내고 있는 칼라에 활용성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난쟁이들이 왕자의 마을 주민들이 된다던가, 반달이를 괴롭히는 인물들이 된다던가, 역할의 변화에도 재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의상은 잘 만들어져있다. 또한, 누구나 한번쯤 백설공주와 사는 난쟁이의 의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봤음직한 디자인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진짜 난쟁이의 의상이라고 믿게 하는 힘이 있다.
몸짓언어로 표현되는 것은 많다. 무용의 여러 극을 보면.. 몸짓으로 많은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이 연극에서 반달이가 보여주는 몸짓언어는 단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이며 더 넓게 나아가서는 그의 생명이며 혼이다. 그의 존재 이유. 사랑하기에 상대방을 위해 그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몸짓. 그것은 오직 몸짓으로만 표현되어질 수 있기에 고결하고 눈물겹다.
“바람의 언덕을 지나 벌꽃의 호수를 건너 이곳 안개 숲에 오신 백설공주님을 사랑합니다…….”
반달이가 표현해내고 있는 몸짓언어는 이것이다. 안개꽃을 표현해내기 위해서 그는 ‘촉촉함’과 ‘잔잔함’을 몸짓으로 그려낸다. 왕자가 반달이의 몸짓언어를 알아봐준 것은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였을까. 사랑한다는 말을 몸짓으로 표현해내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했던가. 이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얼마나 쓸데없는 것들을 중요한 것인 양 입으로 꺼내어놓고 또 다른 말로 옮기는 것을 반복해왔던가. 누군가에게 사랑한단 말을 전하기 위해 이토록 힘겹고 정성스럽게 가슴 졸여본 적이 있던가. 다만 사랑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간절했던 적이 있던가. 죽은 반달이의 몸짓은 관객의 뜨거운 눈물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어른이 되었지만 사랑 따위 믿지 않는다고 거침없이 말하기엔 내가 아는 하지만 애써 외면하고 살아온 사랑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준 연극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끝내 말할 수 없는 사랑이라도 반달이가 보여준 그 사랑 앞에 나는 연극 밖 말 못하는 난쟁이가 아니었나 생각을 해본다.
5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 연극을 보기를 기대해 본다.
많은 사람들 가슴에 큰 울림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지
<대중문화예술대학원·공연예술학과·석사과정5>
이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