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다수의 의견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생일 케이크에서 축복의 이미지를 가졌던 초가, 제사상 위에서 추모의 의미를 가졌던 초가 거리로 나왔다. 얌전히 타오르는 촛불을 손에 쥐고, 그 촛불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촛불을 들고 모이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촛불시위는 온라인에서 출발해 오프라인으로 나가는 형태로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모아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종교인들의 촛불행진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진 촛불시위는 평화와 저항, 민주화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촛불시위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영혼을 위로하고,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것이다.
2003년 6월 13일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이 미 2사단 무한궤도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사망했고, 같은 해 11월 28일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촛불시위를 처음 제안했다. 그리고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시위에는 친구, 직장동료, 부모를 따라 온 어린아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이를 시작으로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촛불을 들었고, 송두율 교수의 부인도 촛불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이라크 파병 반대,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 등 시위와 시민행사 때마다 어김없이 촛불이 등장했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찬성하는 사람들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모여든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가장 긴 기간 동안 진행됐던 촛불시위는 지난해 7월 25일 시작해 183일 동안 계속된 전북 부안 원전센터 건립 반대시위다. 우리나라 촛불시위는 2002년 월드컵의 거리 응원전을 치르면서 겪었던 단체 행동의 힘이 정치적 사안과 결합해 또 다른 형태의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촛불시위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열리는 행사(?)가 아니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기폭제가 됐던 촛불시위가 있었고, 2001년 미국 뉴욕의 9·11 테러 현장에서 촛불 추모제, 아프간 공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60년대 베트남 전을 반대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벌어졌었고,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대학생과 시민들이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비폭력·평화시위의 수단으로 촛불을 밝혔다. 또 80년대 필리핀 민주화 과정에서도 촛불이 밝혀졌다. 89년 말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대통령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한 것을 비롯해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혁명에서도 어김없이 촛불시위가 등장했다.
그러나 모두가 촛불시위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한해서겠지만, 촛불시위를 개인숭배주의, 반이성주의의 전형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으며, 촛불시위가 이익단체의 시위용으로 전락했다고 보기도 한다. 촛불시위의 의미와 목적도 모르면서 단지 군중심리에 의해 그런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이들로 인해 그 진정한 의미가 퇴색된다는 지적도 있다. 또,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에 휘말리고 있으며 촛불시위로 인해 여론이 둘로 갈라진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촛불 모임에 관한 표현법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위’는 위력이나 기세를 드러내어 보임을 뜻하고, ‘집회’는 공동 목적을 위하여 많은 사람이 일정한 때에 일정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뜻한다. 언론에서는 어느새 촛불 ‘시위’에서 촛불 ‘집회’로 표현이 바뀌었으며, 이제는 ‘문화’행사로 이름이 바뀌어가고 있다. 문화행사로 자리 잡아 간다는 것은 좋게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보고 나쁘게는, 한 순간의 유행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촛불이 가지는 의미는 축복과 추모의 의미를 넘어 ‘목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올바르게 내야할 때이다. <방유미 기자>
0166500428@dankook.ac.kr


3월 20일 부산 서면 탄핵 반대 촛불집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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