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한국 문화<현장르포>
초가집 - 우리네 삶의 영원한 안식처

초가집은 열린 공간이었다
현대의 주택들이
닫힌 공간이라면
초가집은 가족과 가족을
이어주는 공간이었다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아래엔
도란도란 속삭이는 가난한 가족들의 너그러움이 있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 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꿈엔들 잊을 수 없다. 고향의 모습이 이러하다면, 어렴풋이 잠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고, 아이는 실개천에 발 담그며 물장구치던 그곳을 차마 어찌잊을까.
질화로에 밤 구워 먹으며 옛이야기 듣고, 아내와 함께 밟던 고향 흙의 따뜻함도 발끝에 남아있는데 이 또한 어찌 잊을 수 있으리요.
고향이 이토록 그립지 않다 하여도, 향수(鄕愁)라는 감정을 한번 느껴보지 못했다 하여도, 나를 고민 한번 없이 단번에 잘라버린 빌어먹을 회사처럼 원망스럽다 하여도, 손수 이엉 엮어 지붕 올리고 가마솥 밥내 풀풀 내며, 부뚜막 연기 하늘 향하는 초가집 정서만큼은 와 닿을지 모른다.
우리네 정서를 가진 한국인들은 이를 마음의 고향이라 부르고, 그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곳을 고향(故鄕)이라 찾아 나선다.
지금은 많이 변해버렸을 그 곳. 초가 풍경이 눈에 선하고, 삼삼오오 마을을 이루며 정 부비며 살았던 곳. 그곳이 그리워진다.
백 년 전쯤. 기독교 선교사들이 퍼뜨린 찬송가 따위의 음악을 우리는 양악(洋樂)이라 불렀었다. 우리와는 인연이 먼 서양의 소리라 하여, 당시 배재학당의 밴드부 이름도 양악대(洋樂隊)였다. 외국 선교사들이 짓고 살던 벽돌집은 양옥(洋屋)이었다. 옷도, 음식도 우리네 것과 너무 다른 서양의 것이라 ‘양(洋)’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백 년이 채 못 되는 사이에 나그네와 주인의 자리가 바뀐다. 현대인들은 서양 것을 먼저 찾고, 선호한다. 그 와중에 우리네 주거 문화는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고층건물들은 현대 시민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선인들이 가졌던 많은 것을 잃게 된것이다.
조상의 혼을 모시는 공간도 사라지고 마당, 담, 뚝도 없다. 사당은 고사하고 상청(喪廳)을 차릴 만한 공간도 없다. 사람간의 정(情)이 사라지고, 이웃간의 긴밀한 정도 잊은 채 살아 온지 오래다.
편리를 좇느라 잃어버린 우리네 심성을 어떻게 되찾을까.
벼농사를 짓기 시작할 무렵부터 생겨난 초가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바로 현대인이 잃어버린 정(情)을 품고, 사람 냄새를 풍기며,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집이었다. 조상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초가집. 우리가 온몸을 담아 온 것이 집이라면, 초가집은 우리의 은인이라 할 수 있다. 그 시절 우리네 가정은 이랬다.
한참 동안이나 부자(父子)는 볏단과 이래저래 씨름하고 있다. 올해 겨울을 따뜻이 나기 위해 지붕을 손질하는 중이다. 손수 일을 거드는 영돌이가 한마디 툭 던진다.
“아부지, 와 지붕을 볏짚으로 만든 다요? “
땀 흘리며 일하는데 귀찮게 구는 것 같아 무시해 버리려다, 그놈 호기심이 대견해 아비는 대답한다.
“이놈아야, 볏짚 속을 잘 봐라. 속이 비었제. 여름에는 그 안에 공기가 햇볕을 막고, 겨울에는 집에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아니가, 알것나. 조상님들 지혜가 이러 코롬 대단 혔지”
처음부터 알았던 게 아니다. 볏단으로 지붕 올리며 살다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이고, 자신도 새삼 아버지, 할아버지의 지혜를 탄복하고 있는 중이였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새초롬 한 표정을 짓는 아들이 한번 더 캐묻는다.
“저기, 순득이네는 이제 초가집에서 안산다고 자랑 하덥니더. 짚단 다 걷어내고 기와집으로 바꾸던데, 우리는 여기서 계속 살지예 ?”
초가가 불에 잘 타기도 할 뿐더러, 새마을 운동의 시작으로 마을에 초가가 하나둘 없어지는 모양이였다. 그래도 아직 쓸만한 집인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자꾸만 든다.
“와? 부럽나. 이것보다 더 좋은 집이 어딨노. 이것봐라. 겉이 매끄러워가꼬 빗물이 잘 흘러내리제, 그래서 두껍게 덮지 않아도 스미지도 않는다. 니도 내 한테 한번배우고 따라하는 것 보믄, 짚단으로 지붕 잇는게 어렵지도 않코…”
좋다라고 생각되는 점은 다 든다. 실로 초가지붕은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한해에 한번씩 덧덮어 주므로 집에 각별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언제나 밝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가을걷이로 마당이 비좁아 질 때는 고추 따위의 농작물을 널어 말리며, 아이들은 지붕위를 타고 놀다 혼나기도 한다. 천둥 호박이나 바가지의 덩굴을 올려서 지붕을 밭의 일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어느덧, 이 골짜기까지 조국근대화 사업이 확대되고, 시골마을의 특성이나 전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박한 화장을 한 듯한 원색의 알록달록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초가지붕은 모두 사라져갔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수천년 전통의 초가집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민속촌, 민속마을 아니면 초가집을 구경하기도 어려워 진 형편이 됐다.
경남 밀양 현장르포 취재길에, 박시춘 선생의 생가를 복원해놓은 모형 초가를 볼 수 있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비내리는 고모령’ 등 불멸의 대중가요 작곡한 박시춘 선생의 생가는 지금은 초라해진 초가집이었지만, 그의 열정을 집안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초가집은 그렇게 우리네 가족을 연결시켜주는 영원한 둥지였고, 보금자리였다.
<길지혜 기자> tameyou@dankook.ac.kr



①우리네 아버지들은 가을걷이를 끝내고, 이엉을 엮어 지붕을 갈았다.
②작곡가 박시춘 선생 생가를 복원한 초가모형.
③초가집 짓고, 농사짓고, 이들의 삶은 여유와 너그러움이 있었다.
④밥내 풀풀나는 가마솥은 초가집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길지혜 기자>  tameyou@dankook.ac.kr